▲ 변월룡, ‘1953년 9월 판문점 휴전회담장’, 1953년, 캔버스에 유채, 29x4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한 장의 사진 혹은 한 장의 그림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경우가 있다. 작년 덕수궁미술관의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재발견된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 변월룡(邊月龍 Varlen Pen, 1916~1990)의 이 그림도 그런 경우의 하나이다.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보던 휴전회담장의 실내 정경이 실체적으로 다가와 소름 끼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원형테이블을 덮고 있는 보의 색깔이 흰색, 그 옆에 놓여있는 네모난 테이블의 보가 녹색이었다는 것을 이 그림을 통해 알았다. 인물중심으로 찍어 놓은 흑백 사진에서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던 비밀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한국전쟁의 종식을 위해 이 방에서 머리를 맞대고 협정안을 논의했던 UN군 총사령관 클라크,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인민지원군 령관 펑더화이(彭德懷)등의 자취는 온데간데없이 텅빈 테이블과 의자만이 놓여 있는 이 그림에 변월룡은 <1953년 9월 판문점 휴전 회담장>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음으로써 자신이 놓여 있던 시간과 공간의 현실성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었다. 갈색 의자들이 보여주는 미묘한 색감의 차이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의 밝기 정도까지가 이 그림이 그려진 목적을 대변한다.

변월룡은 어떤 작가인가? 변월룡은 1916년 연해주 쉬코토프스키의 유랑촌에서 태어나 스베르드로프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 미술대학과 레핀 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1947년에 이미 소비에트 미술가 동맹회원으로 발탁되었던 변월룡은 1951년에는 사실주의 화가로서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레핀 아카데미 데생과 조교수로 취임하는 동시에 미술학 박사학위도 수여 받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그의 인생에도 큰 변곡점이 생긴다. 1953년 변월룡은 소련문화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을 방문하여 평양미술대학 학장 및 고문을 역임하게 된 것이다(1953. 6~1954. 9). 그러나 부인 제르비조바가 북한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변월룡은 불과 1년 3개월간의 북한 생활을 끝내고 다시 러시아로 돌아갔다. 이 그림은 명백히 그의 북한 체류기간에 그려진 그림이다. “형식에 있어서는 민족주의, 내용에 있어서는 사회주의”를 담아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가로서 변월룡이 그린 이 그림은 종전 63년이 지난 2016년에야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쿠르베의 리얼리즘과 그의 아류와 과학적 사실주의인 인상주의 회화는 알았어도 변월룡의 리얼리즘이 이런 식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긴긴 시간 알지 못했다. 역사는 거대서사만으로 언술될 수 없다는 것을 변월룡의 사례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한국전쟁과 냉전으로 끊어졌던 한국근대미술사의 한 부분이 변월룡의 삶과 예술을 통해 복원된 것을 지켜보면서 한국 근대미술사의 과제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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