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정권이 앞으로도 쭉 잘나가려면
그 밥에 그 나물만이 아닌
여러 반찬을 꼬박꼬박 챙겨야 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이었다. 그것은 정권 초마다 행해진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정규적 첫 만남이었고 그림안 사람들 표정도 웃음마저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주 메뉴는 첫날엔 소고기, 둘째 날엔 황태. 이렇게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 간담회가 지난 주 화두에 올랐지만 얘기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로 금새 얼어붙었다. 첫날에는 날씨가 청명해 ‘야외 호프 미팅’ 형식으로 시작됐고 다음날에는 비로 인해 ‘실내 칵테일 미팅’ 으로 황태절임과 견과류를 안주로 내놨다. 이어진 식사는 첫날은 비빔밥, 둘째 날은 콩나물밥이라는 자세한 얘기도 이어진다. 말 많을 사람들이 이를 보고 기다렸다는 듯이 얘기를 만들었다. 첫날 참석한 기업인들에 쇠고기를 통해 격려의 의미를 전달했고 둘째 날 참석한 기업인들에게는 황태처럼 얼어 있는 정부와 기업들의 관계를 녹여보자는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이런 메뉴들을 놓고 알싸한 분위기속에 대화를 이어갈 즈음. 발가락 통증을 호소하던 박 전대통령은 구치소 밖으로 원하지 않은 외출을 하게 된다. 구치소 안이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 습하고 몹시 더워 왼발의 발등까지 부어오르는 등 염증이 퍼진 탓에 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언론은 얄궂게도 삼복더위에 두꺼운 솜이불로 둘둘 말린 채 얼굴을 덮고 병실로 향하는 침대위의 박 전대통령에 모습을 클로우즈업 하고 있었다.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애써 짐작하려 하지 않았다. 보수를 망가뜨린 원죄가 크다. 물론 박 전대통령 역시 지난해 여름휴가를 관저에서 보내다 7월 말 즈음 울산 십리대숲을 깜짝 방문해 전통시장에서 서민풍의 간식거리를 먹어 화제를 모았다. 물론 이후에 탄핵 정국으로 그 간식과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들던 트레이드풍의 모습은 마지막 여름휴가로 기록됐다.

지금에 와서 촛불 하나로 운명이 갈린 전 현직 대통령의 하루를 올려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구치소 안의 죄목이 없어질 일도 아니고 비슷한 시기에 만났을 기업인들이 다시 지금의 대통령과 소고기와 황태를 즐긴다한들 국민경제가 당장에 확 펴질 사정 또한 아니다. 그것은 가난을 결코 국가가 나서 구제할 길이 없다는 뜻과도 다르지 않다. 단지 지금의 정권 역시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에 어느 정도 주름을 펴 다음 정권에 이어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즈음에서 박 전대통령의 셋째 혹은 네번째 발가락 통증을 다른 그것과 함께해 얘기하려 한다. 그것은 개인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아닌 그렇다고 증상을 논해가며 연민의 정을 이 자리에서 구하려는 것도 물론 아니다. 박 전대통령 역시 정권초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그 마음과 같이 많은 기업인들과 밥도 먹고 서로의 공통사에 대해 얘기했을 것이다. 때로는 국가경제에 대한 거창하고 어쩌면 힘겨운 사정들을 들어가며 귀를 기울여가며 맛있을 음식과 함께.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박 전대통령은 정권 초기부터 단추를 잘못 꿰어맸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주기 위한 행동인지 아닌지를 떠나 자기 일을 스스럼 없이 해 나가는 반면 박 전대통령은 발가락 통증을 키우기 위한 하이힐을 너무 높게 신은 것이다. 지금에 와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개떼같이 덤벼들어 전 정권의 시시콜콜한 일들을 ‘이제는 말한다’식으로 고발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된 이유다. 진보진영에서 박장대소해도 보수는 못다 쓴 반성문으로 자중지란만을 보일 뿐이다. 서툴고 세련되지 못한 보수의 어리버리한 행동과 말은 지금도 이어진다. 하지만 전혀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살펴보건대 지금의 진보정권 역시 빈틈은 많아 보인다. 입술이 터지도록 부르는 ‘내로남불’식의 내 뻗음이 그것이고 다양하지 못한 군상의 집합으로 점점 한계가 드러나 보이는 그림 역시 그렇다. 하지만 청와대는 추락하고 있는 지지율이 시간이 가서 저절로 생기는 일로 여기고 있다. 더구나 자기들이 정권을 만들었다는 으쓱함의 촛불 동지들은 ‘내 몫 요구’마저 외쳐대고 있다.

서서히 익어가야 하는 경제정책들도 청와대 눈짓 하나면 알아서 기는 판국이다. 다를 게 없다. 새 정부 출범 두 달이 넘어서야 열린 간담회가 경제계의 불안을 말끔히 해소했는지도 의문이다. 모르고 지내다 지금에 와서 발견한 박 전대통령의 발가락 통증과 같이 정권마다 모든 통증들은 은연중 곪아가기 마련이다. 물론 발가락 주인들이 그 통증을 느낄 때는 구치소 담장 안이나 재판정을 드나들 때의 소지가 크다. 지금의 정권이 쭉 잘 나갈 수 있는 일은 간단하다. 그 밥에 그 나물이 아닌 그 밥에 여러 가지 반찬을 꼬박없이 챙기는 일이다. 그 중 국방과 경제라는 밥과 반찬은 오래전 알려진 사실이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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