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으로 조선은 폐허가 됐다. 무능한 조정은 어찌할 줄 몰라 허둥거렸다. 낙담하던 류성룡에게 이순신은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의 재조산하(再造山河)를 적어 보냈다. 문대통령은 국정농단으로 무너진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며 후보시절부터 이 글귀를 강조했다. 취임 석 달째, 이제 진용을 두루 갖추고 본격적인 '재조산하'에 돌입했다.

검찰·사법은 가장 강도 높은 개혁이 예상된다. 성공 여부가 문재인정부 국정동력과도 연계되기 때문이다. 주요공약으로 강조한 공수처 설치는 문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핵심 사안이다. 난제로 꼽히는 검·경 수사권 조정도 올해 안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감사원엔 4대강 감사를 다시 주문했다. 이어 자원외교 비리 등 MB정부 전반에 대한 감사도 예상된다. 국방은 북핵 대응력 강화와 전작권 회수 등 자주국방과 방산비리 근절을 기치로 내걸었다. 병사 월급을 최저임금의 50%까지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복무기간 18개월로 단축, 군 병력 50만명으로 감축 등 군개혁 로드맵을 밝혔다.

교육도 전면적 개편이 예상된다. 무상급식을 최초로 내걸었던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교육 수장을 맡게 됨에 따라 지난 10년의 교육정책 전반에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자사고, 외고를 폐지해 고교 서열화를 없애고 교육의 공공성 강화와 희망의 사다리를 복원한다는 구상이다. 경제는 그동안의 성장 중심정책을 대신해 '없는 자의 주머니를 채워 경제를 살린다'는 소득주도 성장을 기조로 잡았다.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제로화,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 하나하나 모두 파격이다. 이를 통해 극심한 경제 양극화와 노동의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고 전 계층의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의지다.

예상대로 추진되면 박정희 이후 가장 큰 국가 개조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먼저 검찰·사법개혁은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 공수처 신설은 국회선진화법을 적용 받기 때문에 보수 야당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당이 명확한 반대를 밝히고 있고 바른정당도 "또 하나의 검찰조직을 만드는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문무일 검찰총장이 취임식장에서부터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시작부터 삐걱댈 조짐이다. 4대강 감사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시각차가 크고 정치보복으로 비화될 소지가 높기 때문에 소모적 논란만 일으키다 흐지부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방은 일방적 짝사랑에 상처만 받고 있는 꼴이다. 문대통령이 '베를린 선언'까지 하며 대화를 주창했지만 북한이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고, ICBM까지 연이어 쏘아 올렸다. 교육도 정권마다 바뀌는 정책에 대한 현장의 불신이 깊은데다 교사의 정치참여를 허용하는 방안을 국정과제에 포함하면서 전교조 합법화 등 이념논쟁에 휘말릴 공산이 있다.

가장 핵심인 경제분야는 추진사항 전반에 큰 부작용이 예상된다. 자칫 한정된 사회 자원에서 너도나도 임금 인상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시장경제가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5만여 명 학교 비정규직노조가 임금인상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였고, 버티지 못하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 우려스러운 건 한국 경제의 판도가 바뀌는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향후 어떻게 된다는 정부의 청사진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유럽 등 일부에서 하고 있으니 우리도 될 것이라는 낭만적 판단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알다시피 복지는 한번 확대하면 사실상 되돌리기 어렵다. 재원조달도 문제다. 개혁을 완수하려면 5년 동안 최소 178조원이 필요한데 '부자증세'를 통해 17조원 정도를 마련한다는 것 외에 이렇다할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급기야 문대통령은 1년 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한발을 빼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최근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중 91개가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어떤 해결책이 가능할지 회의적 시각이 많다. 추경 통과 하나에만 한달 반이 걸렸다.

문대통령은 취임 초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겠다"고 비장하게 다짐했다. '다 바꾸겠다'는 '재조산하' 강박에 얽매여 급하게 밀어붙이는 순간 국정은 꼬이고 여론은 돌아선다. '내 생각만 옳다'는 진영논리로 접근하면 여론은 갈라지고 반대세력의 힘을 키워주는 결과를 맞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참여정부가 정치와 탈권위 등에서 성과를 이뤘지만 경제·사회적 민주주의에선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문대통령은 그 이유를 다시 한번 되짚어야 한다.

민병수/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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