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완력을 행사해 서민 등을 상대로 돈을 갈취하는 조직폭력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 전쟁'을 선포한 이후 전국 폭력조직이 한동안 와해한 듯했으나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마약 거래, 인신매매, 청부살인, 돈놀이, 철거용역 등에 관여했던 조폭은 스포츠·연예 분야에도 진출했다.

야구 투수 LG 트윈스 박현준과 김성현에 이어 넥센 문우람, NC 이태양 등이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된 사건의 배후에도 조폭이 있었다.


프로 야구가 연고지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지역 조폭과 선수가 자연스레 어울린 탓에 스포츠 스타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조폭은 120조 원 규모의 인터넷 도박 등 온라인 사행산업이나 원정도박에도 마수를 뻗었다.

전북 전주에서는 최근 심야 장례식장에서 양대 폭력조직원 39명이 야구방망이와 골프채, 각목 등을 들고 난투극을 벌여 시민들이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조폭은 근래에 합법 활동으로 위장해서 수익을 챙기고 정치인이나 법조인, 경찰 등의 비호를 받는 탓에 소탕이 쉽지 않다.

강원도에서는 경찰 간부가 유치장에 갇힌 조폭 행동대원을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편안하게 면회할 수 있도록 특혜를 제공했다.

조폭이 대기업 도움을 받은 사례도 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차남 폭행범을 구타할 당시 한화 측은 유명 조폭 오 모 씨에게 1억1천만 원을 전달했다.

국내 최대 폭력조직인 범서방파 방계인 '맘보파'를 이끈 오 씨는 1986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서진룸살롱에서 조폭 간 칼부림으로 4명이 숨진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다.

'범죄 전쟁' 때는 전국에 지명 수배된 10대 폭력조직 우두머리 50여 명에 포함되기도 했다.

공권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잡초처럼 되살아나는 조폭은 우리나라에서 언제 시작됐을까?

범죄 전문가들은 조폭의 뿌리를 고려 중기 도방으로 꼽는다.

도방은 1179년 무신정권 최고 지도자 정중부 일가족을 살해하고 집권한 청년 장교 경대승의 친위대다.

도방은 수도 개경의 건달을 모아 정적들에게 테러를 가하고 양민을 괴롭혔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조폭 관련 기록이 많다.

명칭은 조폭이 아니라 검계나 왈자 등이었다.

한양 뒷골목을 주름잡은 이들은 도박장이나 기방(기생집), 술집 등 이권을 놓고 싸움질을 일삼았다.

검계는 칼을 차고 다니는 무리를 뜻한다.

숙종실록 등을 보면 검계가 한양 도심에서 떼 지어 군사훈련을 하자 백성이 공포에 떨었다고 좌의정 민정중이 숙종에게 보고한다.

훈련은 한밤중에 창포잎처럼 생긴 칼을 차고 남산에 올라가 태평소를 불어 행동개시 신호를 보내거나 두 패로 나눠 싸움연습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1980년대 이후 조폭이 산속에서 장기간 합숙하며 체력을 키우고 결속력을 다진 것과 닮았다.

검계는 재물을 훔치거나 강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량한 백성의 목숨을 해치기도 했다.

숙종(1661~1720)은 검계의 범죄 행각을 보고받고 소탕령을 내려 10여 명을 체포한다.

이들 중 한 명은 포도청 유치장에서 칼로 자해하는 소동을 벌인다.

지방에서도 검계 범죄가 포착됐다.

경기도 광주에서 검계 조직원이 낀 괴한 7명이 길 가던 주부를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 일대에는 노비 주인 살해를 목표로 결성한 살주계가 활동했다.

포도청이 살주계 구성원 7~8명을 체포할 당시 압수한 책자에는 양반 살육, 부녀자 겁탈, 재물 약탈 등 행동강령이 적혀 있었다.

결손가정이나 빈민층 출신이 주로 조폭으로 진출한 지금과 달리 검계 구성원은 대부분 유력층 자식이다.

고관대작까지 비호하는 일이 잦아 검계 앞에 공권력은 무기력했다.

하지만 범죄 양상이 임계치를 넘자 영조는 초강경 대응을 지시한다.

포도대장 장붕익에게 초법적 권한을 주고서 소탕전을 맡긴다.

장붕익은 검계 입단 조건의 하나가 칼질 흔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몸에 칼자국이 있는 성인 남성은 예외 없이 체포했다.

추가 조사를 통해 검계 조직원으로 확인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형했다.

검계가 가만히 앉아서 당한 것만은 아니었다. 조직 와해 위기에 몰리자 반격에 나섰다.

1733년에는 심야에 장붕익 집으로 자객을 보내 암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잠결에 사람 그림자를 발견하고서 칼을 들고일어나 대적하자 자객은 담을 넘어 도주했다고 한다.

사헌부(검찰) 관리의 집에 "우리가 모두 죽지 않으면 너희 배에다 칼을 꽂고 말겠다"는 섬뜩한 협박문이 나붙기도 했다.

조폭 소탕전이 광범위하게 벌어진 1990년대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991년 광주지검 근무 시절 조폭 32명을 구속했을 때 홍 대표 자택으로 회칼이 배달됐다고 한다.

1994년에는 경북 안동의 최대 폭력조직 대명회 행동대원들이 동료 구속에 앙심을 품고 검사와 수사관을 폭행하고 안동 지청장 승용차를 부수기도 했다.

김기영 전 강동경찰서장은 1995년 천호동 텍사스촌으로 불리던 사창가를 단속했다가 조폭으로부터 경찰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영조 시절 범죄 전쟁으로 검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은밀하게 명맥을 유지하던 검계가 치안이 혼란한 순조(재위 1800~1834년) 시절에 다시 활개를 친다.

1803년 사간 이동식이 올린 상소를 보면 검계의 횡포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공직사회가 무사안일한 탓에 국가 기강이 흔들리고 미풍양속이 역대 최악으로 훼손됐다고 이동식은 개탄한다.

칼을 찬 검계 조직원은 몰려다니며 위력을 과시하고 민간인 약탈과 도둑질을 서슴지 않았다.

고관대작의 집에 들어가 행패를 부리거나 양반가 안채에서 부녀자를 폭행하기도 했다.

신분 차별이 엄격했던 조선 양반사회가 조폭한테 철저히 유린당한 것이다.

검계의 복장과 일상은 특이했다.

평소 낮에 잠을 자고 밤에 활동했다. 비단옷을 입은 뒤 겉에는 낡은 옷을 걸쳤으며 품속에는 쇠꼬챙이처럼 긴 칼을 넣어 다녔다.

일반인과 정반대로 맑은 날에 나막신을 신고, 비나 눈이 오는 궂은 날에는 가죽신을 신었다. 갓은 구멍을 뚫어 쓰고 다녔다.

범죄조직 왈자도 백성을 괴롭히기는 마찬가지였다.

검계처럼 무리 지어 다니거나 흉악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주로 기방을 드나들며 싸움질을 했다.

신윤복의 풍속화 '기방난투'에 건장한 남자가 웃옷을 벗어젖히고 주먹질을 한 뒤 씩씩거리는 듯한 동작이 잘 묘사됐다.

대부분 지방 출신인 기생은 왈자가 관리했다.

기생을 보호하는 기둥서방 겸 매니저 역할을 한 것이다.

막대한 이권이 걸린 기방 운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실세와 연결되고 격투 실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했다.

대전별감이나 포도청 포교, 의금부 나장 등이 주로 기둥서방 노릇을 했다.

이들은 오늘날 대통령 경호원, 형사기동대 경찰관, 경찰청 특수수사과 수사관 등과 비슷한 직책이다.

조선 후기 들어 노름이 성행하자 왈자들은 도박 사업에도 손을 댄다.

도박은 투전, 골패, 쌍륙 등으로 다양했으며 중국에서 수입된 투전의 인기가 가장 높았다.

투전판에는 노비나 평민은 물론, 지체 높은 양반까지 뛰어들 정도였다.

속칭 도리짓고땡 도박에 등장하는 갑오나 장땡은 투전 용어다.

흥선대원군(1820~1898년)이 조직한 천하장안도 조폭으로 분류된다.

투전꾼 출신 건달 4명의 성을 따서 지은 천하장안은 대원군을 24시간 밀착경호를 한다.

지방을 돌며 수령의 일거수일투족과 민심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근대 조폭은 일본강점기에 일본 낭인과 야쿠자가 한양에 진입하면서 형성된다.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는 조선 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서울 명동과 종로 등에서 활동한 김두한과 시라소니, 고희경, 엄동욱 등이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승만 정권에서는 정치깡패가 활개를 쳤다. 이정재와 유지광 등이 속한 '동대문 사단'이 대표 사례다.

1961년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정치깡패를 소탕하고 이정재 등 두목급은 처형한다.

이후 서울 뒷골목이 조용했으나 1970년대 중반 싸움 양상을 확 바꾼 조폭이 등장한다.

주먹이나 몽둥이 대신에 손도끼와 회칼 등으로 무장한 호남 출신 3대 조폭이 상경해 암흑세계를 장악한 것이다.

이들이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범죄 수법은 더욱 잔인하고 흉포해진다.

범죄 전쟁 이후 거대 조폭은 무너졌으나 최근에는 점조직 형태로 진화했다.

7~8명씩 활동하다가 이권이 생기면 여러 조직이 합세해서 수익을 갈취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범죄단체를 구성만 해도 중형을 받는 사법 현실을 고려한 꼼수다.

신흥 조폭은 보이스피싱이나 아파트·상가 분양, 기업 인수·합병(M&A) 시장까지 넘본다.

중국 범죄단체 등 외국계 조폭이 국내 조직과 연계해 서울 강남 등으로 세력을 확대한다는 소문도 있다.

약자를 괴롭히고 서민의 피를 빨아먹는 조폭을 근절하려면 분리대응을 해야 한다.

일자리가 없어서 노점상 등을 상대로 소액을 빼앗는 생계형 조폭은 교화와 복지에 방점을 두고 관리해야 한다.

기업형 조폭은 중형으로 다스리는 한편 돈줄을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

조폭은 돈이 생기지 않으면 와르르 무너지는 속성 때문이다.

전두환법처럼 범죄 수익의 환수 시효를 늘리고 직계가족이 아닌 제삼자에게 넘어간 재산도 추징하는 법률을 만든다면 돈줄을 끊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극악무도한 조폭은 물론, 배후 실력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조폭은 빈대나 벼룩과 마찬가지로 음습한 곳에서 활동한다는 점에서 박멸 방식도 닮아야 한다.

먹잇감을 끊고 서식지를 햇빛에 드러내고 살충제를 분사하듯이 자금 흐름을 막고 명단을 밝히는 한편 법정 최고형을 내리는 것이 조폭 종합 근절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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