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인가 하면 나는 친정부주의자다. 공직자들의 소명의식과 중립적인 공익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중시하는 학파에서 공부했고, 욕먹을 각오로 이 학파의 대표저술 중 하나인 『공무원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정부를 무능한 존재로 보면서 툭하면 공직자를 욕하는 부류에 대해 쓴소리도 해왔다. 정부와 공직자를 무조건 때리기 보다는 정파적 이해에 휩쓸리지 않는 공익수호의 보루가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좌파는 큰 정부, 우파는 작은 정부 선호

그렇다고 큰 정부를 선호하는 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작지만 강한 정부를 만드는 게 목표다. 정부의 크기와 관련해서 흔히 좌파와 우파의 입장을 대비해서 얘기하곤 한다. 좌파는 큰 정부를 선호한다. 간혹 성장을 무시해서 문제지만 고용이나 복지 같은 분야에서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썼던 뉴딜정책과, 정부가 국민들의 삶을 최대한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적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반면 우파는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 경제는 확립된 룰을 어기지 않는 한 시장에 맡기고, 복지에서도 공동체가 붕괴되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만 정부가 역할을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좌파의 큰 정부론이 평등과 정의를 앞세운다면, 우파의 작은 정부론은 자유와 창의를 중시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 정답일까? 적어도 다음 두 가지에는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첫째, 정부가 해야만 되는 일은 제대로 해야 되기 때문에 작은 정부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큰 정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할 일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거다. 이를테면, 세월호 침몰이나 여름철 물난리 같은 안전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다. 둘째, 그러나 아무리 중요해도 무한정 큰 정부를 만들 수는 없다. 쓸 수 있는 돈의 범위 내에서 조직을 만들고 사람을 뽑고 정책을 집행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돈은 대통령이나 장관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힘겹게 벌어서 낸 세금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만능주의, 엄청난 실패를 초래할 수도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통상적인 큰 정부 논의를 넘는 가부장적인 정부만능주의가 만연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공무원 17만4천명이 포함된 공공부문 인력 81만명을 늘려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큰 정부를 만들겠다고 한다. 비정규직 제로화, 성과연봉제의 폐지, 이동통신료 기본요금 폐지 등 시장의 가격이나 고용에 정부가 개입하고 있다. 기초연금도 올려주고, 아동수당도 신설하고, 사병월급도 올리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족분도 국고로 지원하겠다고 하며, 심지어 민간기업 근로자들의 휴가비까지 정부예산으로 지원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정부가 만능인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의도가 선한 건 알겠다. 그러나 과연 정부가 해야 할 일인지, 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특히 초고소득층에 대한 증세 정도로 정부만능주의의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많은 국민들이, 앞으로 더 많은 증세가 있거나 아니면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국채를 발행하게 될까봐 우려하고 있다. 작년에 겨우 40만명을 조금 넘었고 금년엔 36만명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생아 수를 생각하면 과연 우리 아이들이 국가부채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역사는 말하고 있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시작된 것이라도 가부장적인 정부만능주의가 엄청난 파국을 초래할 수 있음을. ‘정부의 실패’가 ‘시장의 실패’ 보다 더 큰 폐해를 가져온다는 것은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처절한 실패가 보여준 교훈 아니던가? 로마제국의 멸망도 마찬가지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따르면, 유능한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외적으로부터 로마를 지키고 시민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권한을 4명의 소황제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선한 의도로 황제의 막강한 권한까지 내려놓았지만, 소황제들이 2배 이상 커진 관료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걷었던 것이 멸망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 당시 “세금 내는 사람보다 세금 걷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얘기까지 있었을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80여일이 지났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 미국과 중국 등 열강과의 관계, 높은 청년실업률, 저출산?고령화, 소득 양극화, 성장동력의 상실 등 시급하고 중대한 국가적 과제를 생각하면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정부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 채택한 방법이 역사적으로 실패한 정부만능주의라는 점이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아침이다.

박수영 아주대 초빙교수, 전 경기도 행정1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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