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정조 10) 12월 6일 한 인물이 능지처참형을 당하였다. 정조가 국왕으로 등극한 지 10년 동안 딱 한번 있었던 능지처참형이 벌어진 것이다. 얼마나 대역죄인이었으면 정조가 능치처참형을 내리고 형이 집행이 되었단 말인가! 그 극단적인 형벌의 주인공인 다름 아닌 정조시대 군권을 장악한 ‘무종(武宗)’이라 불린 구선복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무예 실력을 지니고 있고, 무인들에게 추앙을 받을 지라도 ‘무종’이란 표현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종(宗)’이란 국왕에게만 사용되는 표현이기에 아무리 고위직 관리나 명망높은 양반 가문이라 하더라도 종이란 표현은 사용할 수 없었다. 이를 사용하면 곧 역적이다. 그런데 일개 무관인 그에게 무종이란 단어를 사용했고, 그가 스스로 무종임을 자랑하고 다녔으니 이는 국왕에게 대역불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를 비롯하여 조정의 관료들이 아무도 그를 제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집안이 오랫동안 무반 가문들의 우두머리로서 역할을 했고, 그를 따르는 무사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인조반정 이후 도성을 중심으로 중앙오군영(中央五軍營)이 만들어졌는데, 이들 대부분은 인조반정 당시 반정 주체들의 사병으로 만들어진 군대이다. 인조는 자신을 국왕으로 만들어준 서인 세력들에게 각 군영의 대장을 그들 스스로 임명할 수 있게 한 특권을 주었다. 그러니 서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하는 세력들을 군영대장으로 임명케 하고, 이렇게 임명된 군영대장들인 무반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세력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력을 휘둘렀다. 그러니 개혁을 열망하는 새로운 세력들은 이들 군부집단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음을 당하였고, 군부세력을 등에 없는 기득권 서인 세력들은 정조시대까지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이렇게 군부세력들의 힘이 강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에 구선복은 무종이란 칭호로 조선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국왕에게 대항할 수 있었다.

정조가 조선의 22대 국왕이 되고 나서 국가 운영을 위하여 전반을 들여다 보았다. 정조가 들여다 본 조선은 너무도 심각했다. 국가 예산의 대부분은 쓸모없는 군대를 유지하게 위하여 사용되었고, 그 쓸모없는 군대를 유지했던 것은 바로 능력도 없는 장수들의 급료와 그들의 지위를 유지하게 위해서였다. 무능력한 무반의 장군들을 위하여 백성들의 세금을 온전히 사용했던 것이고, 그 세금으로 호의호식 했던 군영의 고위 장군들은 백성들을 괴롭히고 국왕의 개혁을 반대했던 것이다.

정조는 국왕으로 즉위 하기전부터 구선복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이기 위해 창경궁 휘령전 앞 마당에서 뒤주에 가둘 때 구선복이 사도세자를 뒤주에 들어가게 강압했다. 그리고 뒤주에 들어가는 사도세자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 광경을 11살의 세손이었던 정조는 그대로 보았다. 그러나 정조는 세손 시절만이 아니라 국왕이 되어서도 구선복을 비롯한 강력한 서인들의 군사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들의 비위를 거스리면 그들이 노론세력들과 연대하여 국왕을 제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대비 정순왕후 등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서인들의 군사들이 도성의 자객집단과 연계하여 경희궁으로 정조를 죽이러 쳐들어오기까지 했었다. 구선복은 정조를 은근히 능멸하는 것에 더해 아예 정조를 시해하려고 하였다. 그가 국방의 잘못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정조를 시해하기 전에 다행히 발각되어 쿠데타는 실패한 것이다. 정조는 구선복의 제거 이후 국방 구조조정을 통해 군영을 통폐합하고 무과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정예화된 군영 체제로 변화시켜 나갔다. 조선 역사상 최고의 국방개혁을 이루어낸 것이다. 이는 정조의 과감한 용기의 결과였다.

지금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있던 군대의 폐단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이들에 대한 개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육군에서 사드 문제를 비롯한 가장 중요한 일들을 대통령에게 보고도 안하고, 별이 무려 4개나 되는 육군 대장은 병사들을 대상으로 갑질을 하고 있다. 촛불대통령과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이다. 이는 올바른 군대의 모습이 아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국방개혁은 남북분단 상황에서도 더 강력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정조와 같은 과감한 결단으로 두려움 없이 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다른 모든 분야의 개혁을 할 수 있다. 이를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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