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방과 후 학습을 가르치고 있는 40년 지기인데, 학생들 중 심각한 문제아가 있어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 무척이나 저항적인 중2 여학생이 한 명 있는데, 학습시간마다 수업을 방해할 뿐 아니라 여러 차례 충고도 하고 야단을 쳐 봐도 전혀 자세가 변하지 않더라고 한다.

전화가 온 그 날, 그 아이를 따로 설득해 보기 위해 수업 후 외부에서 만나 얘기를 나눠 봤단다.

약속장소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화장도구를 꺼내 화장부터 시작한 그 학생의 사정은 이렇다.

가정은 엄마가 결혼을 여러차례해 언니, 막내, 본인의 성이 모두 다르고, 지금은 막내를 낳은 새아버지와 살고 있다.

부모의 이혼 후로 헤어진 친아버지와는 연락도 안되고 지낸다.

그리고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은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징징대는 막내 때문에 짜증만 나서 친구들 만나 놀러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가끔 새아버지쪽 할머니를 찾아가 인사를 한다 길래 기특하다고 생각했더니, 그 할머니는 갈 때마다 용돈을 주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주변에서 저에게 자식은 크면 결국 부모를 닮는다고 하던데 저도 엄마처럼 살 팔자겠지요”라며 친구들에게 전화가 오자 급히 나가더란다.

그렇게 아무 말도 못하고 집에 와 산책 중인데, 중 2짜리 여자아이가 화장을 하고 이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에 가슴이 막혀와, 혹여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이나 사회적 장치를 아는 게 있느냐고 물어온 것이다.

청년들에게 구직활동비까지 지원할 정도로 ‘복지는 그냥 퍼주는 것이다’로 인식되는 시대가 됐지만 청소년을 위한 복지는 아직도 미흡하기만 하다.

혹여 복지정책들이 유권자 중심의 눈높이는 아닌지도 짚어봐야 한다. 그 아이에게 꿈을 주고 싶다.

이범수 인천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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