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아픔 잊고 산게 너무 부끄러워서 할머니 눈도 못마주쳐
일본 대사관 앞을 시작으로 부산·성남·수원·제주 등 국내 51곳과 미국·독일·중국 등 해외 8곳에 설치

 
▲ 김운성·김서경 조각가 부부. 사진=김동성기자/

“우리 국민들이 소녀상과 함께 하고 있는 만큼, 위안부 할머니들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마음을 보듬고 국민의 대대적인 관심을 이끈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부부 조각가는 이 같이 힘을 줘 말했다.

2011년 김운성 작가는 일본 대사관 앞을 지나가던 중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하는 것을 궁금해하던 것이 소녀상을 제작하는 계기가 됐다.

김 작가는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께서 위안부 증언을 하셨던 모습을 봤는데 잊고 살았던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며 “할머니들을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김서경 작가와 고민하다가 아이디어를 낸 것이 소녀상이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비석을 세우려다가 감동이 있고 형상화를 하다고 의견을 나눈 결실이 ‘평화의 소녀상’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작업을 시작하고 난 이후에야 할머니들을 만났다.

김운성 작가는 “처음에는 눈도 못 마주쳤다. 할머니들의 아픔을 잊고 살았던게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서경 작가는 “여러 언론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려야하니 고통스러워 하시는 모습을 봤다”며 “소녀상 제작시에는 방송과 사진, 증언 녹취 등을 참고해 만들게 됐다”고 제작의 뒷이야기를 밝혔다.

▲ '평화의 소녀상' 닦는 김서경 조각가. 사진=김동성기자

소녀상의 뜯겨진 머리칼은 소녀가 처했던 황폐한 상황을 표현하고 있으며 댕기머리였던 당시 소녀들과는 달리 단발머리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국과 부모를 떠났다는 결심을 말하고 있다.

꼭 쥔 두손은 제작시 처음 다소곳하게 포갠 손이었으나, 일본 측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왜곡 등으로 인한 분노로 힘이 들어갔다.

맨발은 소녀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신발을 빼앗긴 것이며 땅을 딛지 못하고 발꿈치가 들여있는 것은 고향땅에 돌아왔음에도 배척당하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고국 땅을 편히 밟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어깨 위의 작은 새는 자유와 평화를 상징한다.

소녀상 뒤에 있는 그림자는 할머니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되는 것을 의미하고 어두웠던 과거를 보여준다. 그림자 안의 나비는 환생을 의미한다. 소녀 옆의 빈자리는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빈자리를 의미하고 있다.

김서경 작가는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 대사관 앞을 시작으로 부산·성남·수원·제주 등 국내 51곳과 미국·캐나다·독일·중국 등 해외 8곳에 자리 잡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소녀 옆에 앉아서 소녀의 마음을 헤아려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운성 작가는 “전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숨기만 하셨는데 이제는 인권운동가로 당당히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평화가 오려면 전쟁이 없어져야 한다.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일본이 잘못을 인정과 함께 역사 왜곡 포기,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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