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생가는 '숙부집'… 실제 생가는 방치된 채 폐허로

▲ 실제 민세 안재홍 선생이 태어난 생가에는 '이곳이 실제 생가'라는 플랜카드가 붙어 있다. 심재용기자
평택시가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1891∼1965년) 선생의 생가를 엉뚱하게 지정해놓고 10여년간 지역 대표 문화재로 홍보해와 물의를 빚고 있다.

(사)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는 후손들의 증언을 토대로 1992년 경기기념물 제135호로 지정된 생가(평택시 고덕면 두릉리 646)는 민세의 숙부(안태섭)가 살던 주택이라고 14일 주장했다.

현재 생가로 잘못 지정된 집은 민세가 1913년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후 귀국해 살면서 일제 식민사관에 맞서 ‘조선상고사감’ 등을 저술한 곳이라는 설명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경기도시공사, 평택도시공사가 시행하고 있는 고덕국제화지구내에 있는 민세 생가는 지난 1992년 경기도기념물로, 2003년에는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물로 지정됐다.

그러나 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민세 생가는 민세가 태어난 집이 아니라 결혼 후 거주했던 집으로 밝혀지면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지역 사학자 및 민세 기념사업회 등을 통해 역사 바로잡기 차원의 재지정 요구가 일기 시작했다.

현재 생가로 지정돼 있는 고택은 1914년에 건축됐다. 민세가 1891년생인 것을 감안하면 출생 23년 후에 지어진 집인 것이다.

민세의 후손과 이웃 주민들은 실제 생가는 두릉리 611의 1∼2로, 현재 생가로 잘못 지정된 두릉리 646 고택의 길 건너편 60m 지점에 위치해 있던 집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 민세 생가가 숙부의 집으로 잘못 지정된 가운데 실제 민세 생가는 건축자재가 쌓인채 방치되고 있다. 사진=(사)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

실제 아버지가 살던 생가터 611―1의 본채는 없어졌고,행랑채와 우물터만 남아있는 폐허로 변해 건축자재가 쌓인채 방치되고 있다.반면,숙부가 살던 611-2는 원형그대로 보존돼 있다.

1992년 경기도기념물로 두릉리 646 소재 ‘고택’이 ‘생가’로 잘못 지정됐고, 평택시는 이를 근거로 검증없이 2007년 ‘생가’로 지정한 채 10년 넘게 지역의 대표적 문화재로 홍보해온 셈이다.

기념사업회는 2016년 고덕국제화지구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LH에 이같은 사실을 알려 생가터를 보존토록 했으며, 오는 10월 문화재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고덕국제신도시 민세 안재홍 실재 생가의 문화재 지정 필요성과 활용방안’ 학술대회를 열어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을 계획이다.

황우갑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LH가 새로 밝혀진 생가터와 현 생가(숙부 주택)를 모두 존치키로 결정했다”며 “학술대회에 이어 문화재 조사와 지정을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평택시청 차상돈 문예관광과장은 “민세 생가가 잘못 지정됐다는 말은 나돌았으나 기념사업회 측에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본격적인 검증절차가 이뤄지지 않았었다”며 “오는 10월 학술대회를 근거로 보다 정밀한 고증을 거쳐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민세 안재홍 선생은 일본 와세다대 유학시절 학우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귀국 후 조선일보 주필 및 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언론·교육활동을 통한 민족계몽과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다. 8·15광복이 되면서 몽양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해 부위원장으로 활약했으며 1950년 평택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인물이다. 

심재용기자/sj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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