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본과 전쟁중이야. 그것은 바로 역사전쟁이고, 지도전쟁이지”

종교 개혁을 이끈 프랑스 출신의 개신교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 요한 칼빈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요한 칼빈은 바로 마틴 루터, 츠빙 그라시가 시작한 종교 개혁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가 1536년 저술한 기독교강요는 다양한 분야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같은 요한 칼빈의 신학적 전통을 따르는 사상을 바로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라고 부른다.

국내 대표적 칼빈주의자로는 정성구(75) 박사를 꼽는다. 정 박사는 한 평생을 칼빈주의 연구에 바친 인물이다. 그가 설립한 한국 칼빈주의연구원과 칼빈박물관이 대표적 사례다. 이 연구원과 박물관은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잘 알려진 상태다. 그런 그가 72주기 광복절을 앞두고 60여점의 ‘독도’ 고지도를 꺼내 들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서양에서 발간된 고지도들도 과거부터 ‘독도’가 한국 땅이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중요 근거 자료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칼빈신학자인 정 박사를 만나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신학자가 왠 독도 고지도를 수집했는지 의아하지?”

14일 오후 만난 정 박사가 꺼낸 첫 말이다.

정 박사의 한국칼빈주의연구원과 칼빈박물관은 성남 분당구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다.

정 박사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연구원이 아닌 박물관으로 손을 이끌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설명을 들어야 신학자가 왜 독도가 한국땅이라고 주장하는 지 이해가 된다는 게 정 박사의 설명이다.

정 박사의 손에 이끌려 들어선 칼빈박물관에는 오래된 서적들이 가득했다

대부분이 칼빈의 신학과 신앙, 그리고 칼빈 해석자들의 자료와 칼빈주의 사상체계에 대한 자료들이다. 또 1800년대 이후 영미, 화란, 독일 등의 신학잡지에 실린 약 3천종의 아티클, 16~17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자료가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돼 있었다. 아브라함 카이퍼를 비롯한 화란 칼빈주의자들의 도서, 전 세계 칼빈주의 학자들의 육성 강의와 설교테이프도 2천여종에 달했다.

“이제 이해가 좀 돼”라며 질문을 던진 뒤 잠시 침묵하던 정 박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칼빈박물관이 있는 곳은 이 곳이 유일해. 자료도 가장 방대할 게야. 이 곳에 소장된 자료들은 1600년~1700년대 뿐 아니라 1500년대 자료도 다수야”라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신학자이지만 역사학자며 지사학자야. 칼빈주의 연구와 함께 일제시대 한국 교회와 우리 민족이 당한 수난사를 연구하는 중에 서양에서 발간된 독도 고지도도 함께 수집을 하게 된 거지. 역사와 지도는 항상 같이 있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는 일본의 신 제국주의와 전쟁중이야. 그것은 바로 역사전쟁이고, 지도전쟁이지”

정 박사는 한·일간 수십년째 벌이고 있는 ‘독도’의 영토 주권 다툼을 두고 이같이 단언했다.

정 박사는 “논리는 논리로, 자료는 자료로 대항하고 철저히 준비해 침략자 일본제국주의와 우익지도자들에게 확실하게 경고하고, 저들의 침략 야욕을 완전히 꺽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에 비해 독도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논리가 부족하다는 게 정 박사의 주장이다.

일본은 교과서에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명시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이념교육화 시키고 있는 데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까지 운운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독도 주권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항의성 집회 등으로 인정에만 호소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박사는 “우리가 일본의 신 제국주의와 전쟁중이라고 주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는 역사에도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876년 고종황재 당시 일본과 맺은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 7조를 예로 들었다.

해당 조항은 조선과 일본의 선객들이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연해의 도서와 암초 등을 일본 항해자들이 측량할 수 있도록 해준 게 골자다.

한국 연해의 정보를 고스란히 내 준 이 조약은 결국 1905년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강제로 박탈당한 을사늑약(을사조약)의 단초가 됐고, 결국은 국권을 상실한 1910년 한일합병으로 귀결됐다.

1910년 조선 점령을 위해 30여년전부터 치밀한 메뉴얼 대로 수행했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역사에 나와있는 것 처럼 일본은 치밀하게 준비를 한 뒤 한국의 국권을 빼앗가 갔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역사에서 알아야 할 것은 침략자로, 패전국인 일본이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다시 한국을 점령하기 위해 모든 학생들에게 일본제국주의 정신을 가르치고 선동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반면,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독도 문제를 즉흥적, 감정적, 감성적으로만 대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박사가소장하고 있는 고지도는 1600년대부터 1900년도 이전의 미국, 영국, 불란서, 독일, 화란, 러시아에서 발행한 원본 한·일 지도다.

이들 지도에는 특히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기록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오히려 1800년대 지도에는 ‘대마도가 한국 땅’으로 표기돼 있는 지도도 많다고 정 박사는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할 대표적 고지도는 1840년 영국 런던에서 출판된 크러클리(Cruchley)의 일본 지도다. 이 지도는 그동안 소개된 적이 없다고 정 박사는 주장했다.

해당 지도에는 한반도 동쪽에 울릉도와 독도로 보이는 두개의 섬이 표시돼 있다.

한국과 같은 색으로 표시된 두개의 섬 중 하나는 알고노트(Argonout), 나머지 하나는 다게렛(Dagelet)으로 명시됐다.

알고노트가 독도, 다게렛이 울릉도다.

서양지도에는 독도의 이름이 불란서 탐험대와 영국 상선의 발견됀 이름을 따 리앙쿠르트(Liangaurt), 호네트(Hornet), 알고노트 등으로, 울릉도는 다게렛 등으로 명시돼 왔다는 게 정 박사의 설명이다.

한국 자료에는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독섬, 송도 등으로 독도의 이름이 명시돼 있다.

1809년 핑켈톤 현대 지도(Pinkerton Modorn Map) 지도, 1815년 톰슨의 일반지도(Thomsons New General Maps), 1850년 영국 존 톰슨(john Thomson)이 제작한 중국지도, 1851년 존 탤리스(John Tallis)가 제작한 ‘한국과 일본 지도’ 등에도 독도가 한국령으로 표기돼 있다고 정 박사는 주장했다.

또 1850년 영국에서, 1864년 미국에서 각각 출판된 일본지도에는 독도 뿐 아니라 대마도도 한국땅으로 명시됐다.

이와 함께 1700년 프랑스에서 출판된 동아시아 컬러지도의 경우 동해와 대마도 남쪽을 한국해협으로 명시했다.

정 박사는 “독도는 우리의 슬픈 역사”라며 “한일간 독도 문제로 첨예한 시대에 독도문제에 대해 정부와 연구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일본에 경고의 메시지를 주기 그동안 모은 고지도를 발표하게 됐다”며 “독도문제에 관한한 확실한 자료 증거를 제시해 더이상 일본이 도전할 수 있도록 민족 자존심을 지켜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국제적으로 독도 뿐 아니라 대마도도 한국 영토임이 증명됐다. 더욱 논리적인 증거를 확보해 오히려 잃어버린 땅(대마도)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모은 지도를 학자들과 공유하고, 정부가 요청하면 자료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일흔 다섯,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랬듯 호적 신고가 2년 뒤늦은 점을 감안하면 일흔 일곱, 적지 않은 나이의 강 박사는 앞으로도 한국을 깨우고 일본의 허위와 거짓을 고발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정성구 박사는 총신대와 대신대 총장 및 대학원장, 칼빈대 석좌 교수를 역임했다. 지난 1985년 한국칼빈주의연구원을 세워 30년여간 국제학술 교류와 칼빈주의 신학 및 신앙 운동에 힘써오고 있다. 특히 한국칼빈학회 창립멤버로 회장을 역임하고, 세계칼빈학회와 국제개혁주의 신행협회, 세계개혁주의 대학연맹, 칼빈주의철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 실천신학개론 등 50여권을 저술하고, 120편에 달하는 논문을 썼는데 대표작인 한국교회설교사는 영어와 일어, 중국어 등 10여개 언어로 번역·출판됐다.

안경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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