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라는 감정에 대응하는 감각이 시각이라면 ‘더러움과 불결함’에 반응하는 감각은 단연 후각이다. 쓰레기를 보고 불결함을 느끼는 것은 모양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악취에 반응하는 것이다. 인분을 더러워 하는 이유도 그와 같다. 모양새보다는 냄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자기 냄새를 갖는다. 꽃에만 향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돌에도 흙에도 냄새가 있다. 나무나 풀, 물과 물고기, 날짐승과 들짐승에도 고유한 냄새가 있다. 바람은 세상의 모든 냄새를 실어 나르는 냄새의 전령이다. 사람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사람의 몸에는 피지선이 있다. 특히 털이 많이 난 곳에 모여 있다. 피지선은 땀을 흘릴 때 12가지나 되는 스테로이드 계통의 냄새 물질(액체)을 분비한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안드로스테논이다. 안드로스테논이 사람에게 특이한 생리 현상을 유인하곤 한다. 이 분자는 인간의 애착심리와 관련이 있다. 아기들이 엄마 젖을 빨면서 편안해하는 것은 엄마의 사랑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기도 하겠지만, 엄마의 젖 주변에서 분비되는 안드로스테논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냄새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악마의 현신일 것이다. 그걸 모티브로 한 소설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다. 주인공 그루누이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악취 중에서 최악의 냄새를 풍기는 생선내장 썩는 구정물통에 버려졌다가 살아난다. 그 뒤 그의 몸에선 냄새가 나지 않는다. 대신 그루누이는 이 세상의 모든 냄새를 구분하고 배합하고 기억하는 신묘한 재주를 갖게 된다. 향수제조공인 그는 사람의 냄새에 탐닉하게 되고 그걸 채취하기 위해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그루누이가 주검의 표피에서 채취해 만든 향수는 그러나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는 천상의 냄새, 즉 사랑의 묘약이 된다. 냄새의 역설이다.

파트릭 무르안의 <유혹의 심리학>(북폴리오, 2005)에서는 유혹의 수단인 후각을 조명한다. 전장의 나폴레옹이 아내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하며 사람의 체취가 얼마나 매혹적인지를 설명한다. 나폴레옹은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이제 두 주 후면 도착할 테니, 씻지 말고 기다리시오.” 냄새는 또한 악의 유혹이기도 하다. 한수영은 소설 <공허의 1/4>에서는 락스와 락스냄새를 오브제로 사용한다.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는 주인공의 심리와 락스 냄새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락스로 죄다 문대버리거나 칵 마셔버리고 싶은 것이다. 안드로스테논이 사랑의 묘약이라면 락스 냄새는 인간의 고통에 호응한다.

시인 정희성은 <불망기不忘記>에서 시대의 아픔과 친구의 죽음을 포르말린 냄새로 회억(回憶)한다. ‘나는 안다 우리들 잠 속의 포르마린 냄새를...’ 영화감독 봉준호는 포르말린 냄새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 주한미군이 한강에 방류한 것은 독극물 포름알데히드였다는 소름끼치는 가정에서 영화 <괴물>이 탄생한다. 때로 냄새는 사랑의 묘약이면서 고통의 동반자이며 강한 독성으로 괴물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장강명의 소설 <표백>은 포르말린과 락스, 포름알데히드로 완전히 표백시킨 현실이 나온다. 그 표백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청춘들, 즉 표백세대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냄새 없는 세상, 얼룩이 없는 현실에서 그들이 선택한 청춘의 길은 기획자살이다. 장강명 표 괴물의 탄생이다.

다시, ‘아름다움’에 대응하는 감각이 시각이라면 ‘더러움과 불결함’에 반응하는 감각은 후각이다. 현실은 소설 <표백>을 비웃는다. 세상은 여전히 씻겨내지 못한 악취에 오염돼 있다. 이번에는 ‘경언유착’이라는 악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서 특검이 제출한 자료 중에 언론인들이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편지들은 하나 같이 청탁과 아부와 비겁의 내용들이다. 혹자는 삼성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라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비굴하고 더러운 언론의 민낯이다. 실로 참기 힘든 악취를 뿜어낸다. 사외이사 자리를 부탁하고, 자식의 채용청탁을 하고, 광고비 좀 올려달라고 읍소한다. 괴물은 도처에 있다. 그들 모두가 체취사냥꾼 그루누이의 표적일 테고 그걸 원료로 만든 향수는 아마도 상상을 초월한 악취를 풍기는 지옥으로 인도하는 향수가 될 것이다.

최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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