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능력이 미치는 한 상처와 시련을 무한정 기꺼이 용납하리라. 하등의 인간적 고뇌없이 밥만 먹으며 살기보다는 껍질을 째고 새순을 붙여내는 나무가 되거라. 살을 가르고 진주를 품거라.

김남조 시인의 진주를 배는 상처들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달 5일(현지 시간)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고(故)윤이상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윤이상은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다. 참배에 앞서 동백나무 한 그루가 고인의 묘비앞에 심어졌다. 이날 베를린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함께 공군1호기를 타고 한국통영시에서 공수(空輸)됐다.

통영은 윤이상 작곡가의 고향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독일 유학생 시절 고인은 북한에 있는 강서 고분(古墳)에 사신도(四神道)를 직접 보겠다며 현지 답사 방북(訪北)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1967년 7월 8일 남과북의 정치이념의 비극이었던 동백림(당시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부고기 대남 적화 공작단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앙정보부는 문화예술계의 윤이상, 이응로 학계의 황성모, 임석진 등 194명이 대남적화공작을 벌이다 적발되었다고 발표했다. 사건 관계자들은 1958년부터 동백림 소재 북한 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利敵)활동을 한데 이어 일부는 입북 또는 노동당에 입당하고 국내에 잠입하여 간첩활동을 해 왔다는 것이다.

1969년 3월까지 동백림 사건 관련 재판을 완료하여 사형 2명을 포함한 실형 15명 집행유예 15명 선고유예 1명 형 면제3명을 선고했다. 그러나 중앙정보부의 발표와 달리 동백림사건 관련자 중 실제로 한국에 들어와 간첩행위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복이 두려워서 또는 단순 호기심에 북한에 잘 도착했다는 신호를 보낸 정도였다. 무려 203명의 관련자들을 조사했지만 실제 검찰에 송치한 사람 중 검찰이 간첩죄나 간첩 미수죄를 적용한 것은 23명에 불과하였다. 더구나 실제 최종심사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사람은 1명도 없었다.

재판결과 동백림 수사가 강제 연행과 고문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줬다. 유학생과 교민들의 강제 연행은 외교적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서독과 프랑스 정부는 영토 주권 침해라고 강력히 항의하고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박정희 정부는 1970년 광복절을 기해 서독 및 프랑스의 의견을 수용하여 사건 관계자에 대한 잔여 형기를 집행면제, 정규명, 정하룡 사형수까지 모두 석방하였다. 당시 윤이상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독일에서 국내로 강제 연행돼 고문 받으며 2년 가까이 교도소에 감금되는 고초를 겪었다. 그는 수감 중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지휘자 카라얀 등 세계적인 음악가 200명이 탄원서를 제출한것에 힘입어 다시 독이로 돌아왔으나 추방이라는 가혹한 정부의 명령은 죽을때까지 정치이념에 시달리며 끝내 고국땅도 밟지 못한채 타국에서 눈을 감아야 했다. 고인의 일생을 뒤돌아 보면 1917년 9월 17일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통영으로 이주하면서 통영에서 수학하며 성장하였다. 14세부터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하였다. 1935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에 입학 정식으로 작곡에 몰두하였다.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작곡과 음악 이론을 독일로가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후 1959년 동대학을 졸업했으며 수많은 작곡의 업적을 남겼다. 기악곡101곡 성악곡17곡 특히 가야금 연주의 농현기법을 비브라토로 바꿔 표현 민요 판소리에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기법 첼로와 바이올린 연주에 사용한 천재성을 인정받아 동서양 중계자 역할을 하며 독일 연방공화국 대공로 훈장(1988)을 받았다. 1990년 평양에서 개최된 범 민족 통일음악제 준비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남북합동공연을 성사시켰으며 독일 자아부뤼겐 방송이 선정한 20세기 100년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의 한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곡가 윤이상을 외면했던 역대 정부 광화문 촛불은 고인이 지나온 험난한 그 길을 밝혀 주었다. 이날 참배에는 발터볼프강 슈파러 국제원 윤이상 협회장과 박영희 전브레멘 음대 교수는 2008년 고인의 생가를 매입했지만 예산 문제로 어려움이 있다며 김정숙 여사에게 문제 해결을 부탁했으며 김여사는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원형 헌화꽃 다발 리본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 조국과 통영의 마음을 이곳에 남깁니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이명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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