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주 보거나 듣는 말이 있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아마도 완전한 창작은 있을 수 없고, 모방은 창조를 만드는 원천이 되거나 모방 자체가 새로운 창조일 수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디지털 융합 시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기존에 있던 것들을 재구성하고 변형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아니 또 다른 형태의 창작행위로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어째 값싸 보이는 ‘리바이벌(revival)’이나‘리메이크(remake)’라는 말 대신에 ‘큐레이션(curation)’이나’‘어댑테이션(adaptation)’처럼 뭔가 있어 보이는 용어들이 사용되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 20세기말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추세를 거치면서, 기존의 것들을 재구성하고 변형하는 ‘패러디’나 ‘퓨전화된 복고풍’은 하나의 예술·문화장르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는 물론이고 의상, 건축, 요리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창조적 모방행위의 조건은 있는 것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새롭게 변형 혹은 재구성해야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지만 옛 것 그대로 인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옛 것 그대로가 견고하게 버티는 곳이 있다. 바로 정치 특히 대한민국 정치다. 100일전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 낡은 권위주의 정치를 청산하고 새 정치를 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압도적 지지를 받으면서 폼(?)나게 집권했다. 노타이 와이셔츠 차림에 테이크아웃(take-out)커피를 들고 벤치에 앉아 참모들과 담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말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는 줄 알았다. 또 대통령이 새로 지명한 총리후보자를 직접 소개하는 모습을 보고, 선진국 정치를 잘 모방했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였다. 집권하자마자 터진 사드 배치, 원전 문제, 부동산 정책 같은 극단적으로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정책들이 마치 ‘오지(5G)네트워크’를 타고 초고속으로 결정·추진되었다. 솔직히 국회는 물론이고 집권 여당 내부에서 조차 별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느낌이다. 지난 10여 년간 ‘불통 정권’이라며 집권 여당을 신랄하게 비판해왔던 모습이 무색해 보인다. 어찌 보면 ‘깜짝쇼의 대명사’ 김영삼 정부 생각도 나고, 1980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과감하고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였던 신군부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른바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를 창조하겠다는 현 정권도 방법은 여전히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 휴일저녁 주요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중계했던 ‘대국민보고대회’를 보면 우리 정치는 여전히 창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취임이후 제대로 된 공식기자회견조차 하지 않았던 대통령 부부가 정부 주요인사와 200여명이 넘는 방청객을 놓고 벌인 ‘아침마당(?)’은 새롭기는커녕 조금 불편했다. 내용은 둘째 치고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한물간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토크쇼를 모방했다는데 대한 불쾌감이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국내외 주요 현안들에 대한 대통령의 설명과 판단을 진지하게 듣는 것이다. 또 행사결과를 놓고 청와대와 여권에서 쏟아져 나온 자화자찬들은 창조적이지 못한 우리 정치의 구태의 진수 같았다.

그래 일회성 행사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공영방송 개혁을 위해 KBS와 MBC 사장을 퇴진시키려는 정부여당의 방식은 정말 전근대적이다. 공영방송을 개혁해야 한다는 점에는 전적 공감하고 또 반드시 해야 할일이다. 또 정권이 바뀌었는데 어떤 식으로든 과거 정부와 무관하지 않은 공영방송 사장들이 눌러앉아있는 것도 좋은 그림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저런 압박과 파행적 방법으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몇 차례 정권교체를 통해 여·야가 번갈아가면서 반복했던 것이다. 창조적이지도 창조적 모방도 아니다. 도리어 대통령이 공약했던 것처럼,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개편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체하는 것이 모양도 좋고 창조적일 수 있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정치는 아니더라도 기존의 것을 조금만이라도 응용, 재구성한 창조적 정치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권의 모습을 보면, 여·야를 떠나 우리 정치와 정치인들은 창조는커녕 조그만 변화조차 거부하는 마치 ‘양철북 소년’을 보는 것 같다. 2017년 대한민국 정치판에는 ‘새로운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 같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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