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이번에는 배신감이 더 큰 느낌이다. 왜냐하면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 국민들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친환경인증 계란에서 무더기로 살충제 성분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친환경이라는 이유로 국민들의 혈세를 지원 받았고, 시중에서도 여타 계란보다 비싸게 팔았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이중으로 사기를 친 셈이다. 농약기준치를 초과한 농장 52개 가운데 31개가 친환경 이었다. 더구나 치명적 맹독성 물질로 1979년부터 사용이 금지된 DDT 성분이 검출된농장도 친환경 인증 농장이다. 이런 비극적인 결과의 뒤에는 이번에도 친환경 인증을 총괄하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출신 공무원들이 민간인증기관에 대부분 재취업 하면서 기업의 이윤창출을 위해 부실한 인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농피아들의 농간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대형사건 뒤에는 꼭 관피아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세월호와 관련된 해피아, 지하철사고에는 철피아, 금융사고에는 모피아, 정치인이 연관된 정피아, 법피아, 교피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적폐다. 이 때문에 2015년 관피아방지법이 시행되면서 고위층 퇴직 공무원들이 산하기관 취업이 대폭 제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하기관 출신들의 민간행은 암암리에 이어졌다. 정부에서는 알면서 묵인해온게 사실이다. 결국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도 농관원 출신 농피아들이 민간기업에 취업함으로써 사단이 난 것이다.
사실 살충제 계란의 위험성에 대한 최초의 지적은 지난해 10월에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국회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일부 농가에서 닭 진드기 발생을 막기 위해 맹독성 농약을 살포하고 있는데, 정부가 3년 넘게 계란에 대해 잔류 농약 검사를 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었다”고 지적 했었다. 결국 정부의 안이한 대처가 문제를 키웠다. 국감 이후에야 60곳의 계란을 검사했는데 유해 성분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올 봄에도 친환경 농장과 계란을 800곳 넘게 조사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대적인 조사에 들어가자마자 친환경 농장 3곳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왔다. 더울수록 진드기가 더 들끓어서 살충제를 많이 쓰기 때문에 지난달부터 조사했어야 했다. 정작 가장 살충제를 많이 쓰는 한여름에는 ‘수수방관’한 것이었다.
에그포비아에 휩싸인지 일주일. 정부는 지난 21일 ‘살충제 검출 계란 관련 추적 조사 및 위해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살충제 ‘피프로닐’에 최고 농도(0.0763㎎/㎏)로 오염된 계란을 매일 2.6개씩 평생동안 먹어도 안전하다(만성 독성)”고 밝혔다. 오염된 계란을 하루 동안 또는 한꺼번에 먹을 경우(급성 독성)엔 “1~2세는 24개, 3~6세 37개, 성인(20~64세)은 126개까지 섭취해도 괜찮다”고도 했다. 현실적으로 살충제 계란의 건강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발표를 지켜본 국민들을 아연실색케 만들었다. 결국 살충제 계란을 국민들에게 계속 먹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2.6개씩 수십년간 먹는다고 가정해보자. 만성독성이 체내에 축적될 경우 정말로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인가? 걱정스럽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협이 나섰다. 의협은 “살충제 성분은 소량도 경우에 따라 세포 독성이나 돌연변이, 장기 손상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환경보건학회도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정한 만성 허용 섭취량은 0.0002㎎/㎏”이라며 “‘급성 독성이 미미하다’는 식약처 주장은 만성 독성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흐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에그포비아로 정신 못차린 열흘간 주무 부처의 대처는 뒷북행정이었다. 오락가락행정이었으며, 불신임 행정의 전형을 보는듯했다. 설상가상으로 ‘릴리안생리대’에서도 인체에 유해한 독성물질이 발견됐다. 주무부처는 마찬가지로 식약처다. 이번 만큼은 ‘사후약방문’이 아니길 기대해 본다.
표명구 경제부장 / 고양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