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현덕사를 종종 찾아 오는 젊은 보살님이 한분이 있다.

그 보살님이 내게 한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난 봄 어느 봄날 벗꽃이 하얗게 눈이 부실 만큼 화려하게 피는가 싶더니 봄 바람따라 꽃잎이 속절없이 우수수 흩날리며 떨어 지는 꽃잎을 보며 이제는 저렇게 지는 벗꽃을 보면서도 서운해 하거나 슬프하지 않는다는 애기를 담담하게 들려 주었다.

왜냐면 봄꽃이 지고나면 여름꽃이 피어나고 여름꽃이 또 지면 가을꽃이 기다렸다는듯이 가을햇살 파아란 하늘 아래 보란듯이 피어난다. 지금은

삼성각옆에 노란 마타리꽃이 코스모스 만큼이나 여린 가지에 노랗게 피었다. 코스모스도 피기 시작하였고 억새꽃도 삐쭉삐쭉 올라 오기 시작하였다.

대웅전앞에 놓인 큰 함지박에는 하얀 백련이 여름내내 피고지기를 하여 백련의 아름다운 꽃잎 만큼이나 더 좋은 연꽃의 향기가 항상 현덕사 도량에 그윽하여 불자들을 행복하게 하였다.

양지쪽 눈이 봄햇살에 봄눈 녹드시 사르르 녹으면 그자리에 눈속에도 핀다는 복수초꽃이 수줍은듯 대견한듯 노오랗게 피었다. 봄기운이 좀더 완연하여 따뜻해지면 포행길에서 만나는 노루귀를 닮은 노루귀꽃이 솜털이 보송보송 귀엽다.

이름이 할미꽃은 너무나 억울하다.

꽃이 피면서 할미꽃이라 부른다. 갓피어난 애기꽃도 할미꽃이라 불러지니 참으로 안타까운 이름이다.

길가에 흔하게 볼수있는 애기똥풀꽃은 사랑이 듬뿍 묻어 있는 이름이다.

나에게 진달래는 그리움이고 향수이다. 어렸때 친구들과 입술이 까맣도록 따서 먹었던 참꽃이 진달래다. 봄이면 온 산천을 분홍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봄만되면 현덕사에서는 참꽃을 따서 화전을 부쳐 먹는다. 화전이 하도 예쁘 먹기가 미안하고 아까운 마음이였다. 다른꽃은 몰라도 봄이면 참꽃을 몇가지라도 꺽어 찻상이나 공양상위 물병에 꽂아 봄을 느낀다. 하얀 찔래꽃이 피고 비슷한 시기에 아카시아 꽃도 피고 지고 나면 여름꽃인 칡꽃이 피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피고 지고 있다. 포행길에 어디선가 향긋한 꿀향기가 나서 향기를 쫓아 가면 자주색 칡꽃이 무더기 무더기 피어있다.

현덕사 마당에 드리워진 산 그림자를 보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옴을 느껴진다. 보리 매미 울음소리도 어째 힘이 빠진듯 들린다. 해그름이 지면 하얗게 피기 시작하는 박꽃도 오늘 새벽 예불 다녀길에 보니 딱 한송이가 그것도 초라하게 피어 있었다

해가 뜨면 시들어 버릴것이다. 현덕사에도 백일홍이 서너그루가 있다. 여름내 피었다가 이제는 지고있다. 얼마나 꽃송이가 크고 탐스럽게 피었던지 꽃무게를 못이겨 꽃가지가 축축 휘어져 있다. 이름대로 백일동안이나 꽃이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금있으면 용잠꽃이 필 것이다. 용잠은 보면 볼수록 신비롭고 아름다운 꽃이다. 지난봄에 목화씨를 정성껏 심고 매일같이 물주고 잡초를 뽑고 하였지만 심한 봄가뭄으로 대부분 타서 없어졌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으로 열서너포기가 살아 남아 하얀 미색으로 피었다가 지면서 고운 분홍색으로 변한다. 다래를 따 먹지 않고 두면 하얀목화솜으로 피어 난다. 이꽃은 물을 주지 않아도 오래도록 하얀목화를 볼수 있다. 지금도 다완에는 지난해 가을에 딴 목화가 소복하게 담겨있다. 올갈에도 예쁜 목화솜꽃을 꺽어 찻방에 둘것이다. 보라색 쑥부쟁이가 지천으로 피고 들국화가 날 보란듯이 필거다. 만월산은 구절초가 온산에 피어 찬서리가 내릴때까지 가을 산을 지킬것이다. 한 여름 무성하던 푸른빛 산색도 조금씩 변해 간다. 아름답게 단풍이 들어 가을산을 꾸미다가 된서리를 맞고 낙엽이 되어 환지본처 할 것이다. 엄동설한 한 겨울에도 꽃은 핀다. 온산 온나무에 하얀 눈꽃이 핀다. 설화의 아름다움은 말이나 글로서 형언하기 어렵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지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익어면 자연스럽게 떨이진다. 조바심을 내지말고 노력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삶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고 이치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상법이다.

현종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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