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간 공돈이 문제다. 돈 때문에 사이좋던 이웃도 원수가 된다. 내 돈이 되지 않고 네 돈이 되면 의혹과 불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인심 좋고 정겨웠던 시골마을에도 돈이 들어오면서 사달이 났다. 내 돈을 못 만든 사람들은 여러 이유를 갔다대며 문제제기를 하고, 내 돈을 만든 사람들은 정당했으니 분란 만들지 말라고 큰소리친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 되다 보니 내 돈 네 돈에 눈이 먼다. 악착같이 노력해서 돈을 모았다는 얘기보다 누군가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에 말초신경이 더 반응하는 요즘 네 돈은 내 돈만큼 관심사다. 같은 환경의 비슷한 수준에 있는 사람에게 노력해 번 돈이 아니라 공돈이 생겼다면 인간의 원초적 감정인 시기와 질투로 뇌가 반응하면서 ‘왜 나는?’ ‘왜 쟤만?’ 하게 된다.

평화로웠던 시골마을의 분란도 그렇게 시작됐다. 마을에 돈이 들어오면서 주민 간 고소, 고발전이 벌어졌다. 경기도 광주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도농복합도시인 광주는 개발이 지속되면서 원주민과 외지인들이 뒤섞여 살고 있다. 조용했던 한 시골마을도 수백여 세대의 빌라가 들어서면서 원주민과 외지인-원주민들만큼 마을에서 오래 살지 않은 이들-간의 갈등이 시작됐다.

빌라 자리에 위치해 있던 마을 간이상수도를 빌라 건축으로 못쓰게 되자 마을이장은 빌라업자에게 보상금 명목으로 일명 마을발전기금을 받았다. 이 돈을 이장은 원주민격인 주민들에게 나눠줬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돈을 못 받은 주민들은 마을기금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며 마을은 급속도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투명치 못한 기금 운영에 의혹과 불신이 쌓여갔고 결국 이장과 주민 간 명예훼손 고소와 맞고발 사태로까지 번졌다. 법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파주의 한 마을에서도 마을사업을 놓고 시끄럽다. 정부가 낙후된 접경지역 마을의 수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특성화 마을 조성사업을 지원했는데 그 사업이 영농조합법인 조합장 개인사업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 자치규약에 따라 마을총회를 열고 사업진행 상황과 회계 결산보고를 해야 하지만 조합장이 마을사업의 수익을 독점하고 깜깜이 운영을 하고 있다며 주민들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합장도 할 말은 많다. 조합원으로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결산보고 등을 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 고생고생하며 사업을 일으킬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그간의 결실로 조금씩 수익이 발생하자 일부 주민들이 논란거리를 만들어 말썽이 났다는 것이다.

수년 전에는 안성의 한 마을에서 통장 선임과 관련, 주민 간 갈등이 깊었다. 통장선거 과정에서 부정투표 사실이 발견돼 재선출 과정을 거쳤는데 재선출된 통장이 마을기금 일부를 활동비 명목으로 횡령했다며 일부 주민들이 위촉 파기를 요구했다. 그러자 신임통장을 지지하는 주민들은 사실과 다르다며 맞섰다. 마을기금에서 지급되는 통장 활동비 60만원을 놓고도 주민들 간 갈등은 극에 달했다.

돈 문제로 분열된 마을에서는 이장 등 마을대표를 지지하는 주민들과 의혹을 제기하며 뭉친 반대파 주민들이 자신들만의 대표를 내세우기도 한다. 광주에서는 한 마을에 이장이 두 명 존재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행정관청은 마을 분리까지 검토하고 있다.

마을에 돈이 들어오면서 보다 살기 좋은 마을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전투구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평화로웠던 마을에 번진 민민갈등의 시발점은 씁쓸하게도 돈이다.

눈 감으면 코 베어 먹을 세상이 되다보니 삭막한 아파트숲에 사는 도시민들은 공동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이웃과의 유대 강화에 힘쓰는 모습이 목격된다. 이웃과 어울리기 위한 다양한 채널을 가동하고 커뮤니티를 통해 ‘함께 사는 마을’에 대한 의미 되새기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 반면, 돈이 돌기 시작한 시골마을은 점점 인심 좋고 정겹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마을공동체의 가치,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작은 커뮤니티의 소중한 가치가 돈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흘러들어온 돈을 어떻게 나눠먹을까 보다 그 돈이 마을을 발전시키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에 관심을 쏟았으면 좋겠다. 돈이 가격이 아닌 가치로 작용할 때 시골마을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박현정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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