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삼국지를 읽고 꿈을 키워왔던 우리 세대들에게 역사는 영웅들의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만 놓고 보더라도 그나마 제대로 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 역시 영웅들의 역사, 왕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실록 이전에는 온전한 기록조차 갖고 있지 않았고, 있는 기록조차 민중은 역사의 중심에 놓인 적이 없다.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는 영웅인가, 아니면 민중인가?’

이 질문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도전적인 질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역사 기록은 한 사람의 영웅을 역사의 중심에 놓는 것을 좋아한다. 영웅이 없는 역사는 재미가 없고 또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삼국지를 떠올려보라.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휘하에 온몸을 바쳐 희생한 일반 병사들은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백만대군이라는 숫자적 개념이 전부다. 아군은 몇만이 죽고, 적군은 몇만이 죽었다. 이게 다다.

인천상륙작전 전승 67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는 자연스럽게 맥아더 장군부터 떠올린다. 위기의 상황에서 맥아더 장군은 뛰어난 전략을 발휘해 연합군에게 승기를 가져다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뒤집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인천상륙작전’으로 멋지게 재현해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칭송받게 된다.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정부 시절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유일무이한 영웅이었다. 그런데 영웅을 지나치게 부각시키고 심지어 신격화하면서 전체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영웅의 탄생과 성취 뒤에 감춰진 수많은 희생자들 그리고 유가족들의 고통은 너무나 쉽게 잊혀 버렸다. 인천상륙작전에서 피흘린 헤아릴 수 없는 군인과 월미도 지역 주민들의 희생은 오히려 기억 속에서 지워져버렸다. 맥아더 장군은 기억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의 희생자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게 되었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인천상륙작전을 소리 없이 산화한 군인들의 관점으로, 또 그 과정에서 희생된 무고한 양민의 관점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영화 ‘덩케르크’는 연합군의 수치스런 패퇴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지금의 아름답게 빛나는 역사는 이름없는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인천에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소리없이 희생한 수많은 영웅이 있다. 이제 인천상륙작전도 재조명을 해야 한다. 이름없는 영웅들을 중심에 놓고 역사를 바라봐야한다.

인천시민들은 벌써 10년 가까이 재정 부실로 고통 받고 있다. 아직도 몇 년을 더 고통받고 희생해야 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그 사이 누군가는 스스로 영웅이 되어보겠다고 온갖 사업을 벌여 시의 재정을 부실하게 만들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이 시의 재정을 건전화했다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시의 재정을 건전화하기 위해 복지축소 등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버텨왔던 인천시민들이 겪어야했던 길고 길었던 희생은 잊혀지고 있다. 또다시 영웅이 되고자하는 자가 민중의 역사, 인천시민의 역사를 지워버리려 하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E.H.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현재는 과거가 될 것이고, 미래는 현재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언젠가 미래에 인천도 재정위기의 터널을 벗어나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중심에는 오늘날의 인천시민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은 영웅이 되려는 자가 아닌 온전히 인천시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 때 인천시민들은 자기 자신에게 먼저 축하를 보내고 위로를 전해야 마땅하다.

인천의 역사의 중심에는 인천시민이 있어야 한다. 인천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큰 도약을 이루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 때는 인천시민 각자가, 모두가 인천의 영웅이 되길 기원한다.

박남춘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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