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계일각, 경제계 기타 사회분야에서 오래전부터 보수와 진보가 논쟁을 벌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특히 정계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보수와 진보는 ‘사회정의’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다분히 정치논리로 선거에서 국민의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비춰지고 있다.

만일 진보가 급작스러운 변혁을 요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법적안정성’을 해하는 것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다시피 하는 ‘부정의적 제도’는 개혁·개선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거지의 쪽박을 깨뜨리는 것과 같은 현상을 바라는 국민은 없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의 이런 측면을 부각시켜 표 얻기 행동을 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특히 진보사상을 ‘친 좌익’으로 연결시키면 부자는 물론 가난한 노인들까지 진보를 외면하고 결과적으로 보수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가난한 자, 노인, 장애인들은 사회를 개혁할 힘이 없어 ‘현상 적응적 삶’을 살고 있다. 일종의 ‘무의식적 패배주의자’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니 최근 보수주의 주장은 능력이 있는 개인의 창의, 기업가들의 창의·노력 등을 중시하는 것을 넘어, 기득권옹호, 고소득자의 옹호, 대기업들의 초과이윤 옹호 등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보수주의의 장점이 아니라, 단점을 옹호하는 현상으로 나타나 여러 가지 사회적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원래 ‘안정 속에서 진보’를 향하는 자본주의 발달의 기틀이었던 것이었다. 우리 정계의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보수가 ‘사회정의’를 도외시한다면 그것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기득권자·가진 자·대기업의 지지를 얻어내는 보수가 아니라, ‘개혁·진보’가 환영하는 보수이여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보수주의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보수에 관하여 보수에 따라다니는 부정적 면을 도려내는 보다 치밀한 이론구성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거니와 기득권자·고소득자·대기업가에 비위 맞추는 보수주의는 점점 자리 잡기 어려워질 것이다.

특히 보수의 주장 속에는 지역감정에 의한 표 모으기가 숨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나의 편견일까. 보수가 앞에서 말한 3대 주장으로 비춰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자·노인들·저소득층에서도 일부 정객들이 주장하는 보수주의에 동조하는 것은 그 저변에 ‘지역감정’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보수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일부 정객들의 개혁·개선세력을 ‘급진적 진보세력’으로 몰아가는 것은 지역감정을 더 공고히 하려는 꼼수라면 내가 논리의 비약일까.

우리사회는 사해동포(四海同胞)적 연대의식이 빈곤한 국가라고 평가되고 있는데, 지금과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주장내용은 경제민주화에 반한다는 비판을 잠재울 수 있는 획기적 논리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거니와 현재 일부 정객들이 주장하는 보수주의는 표 얻기 위한 ‘지역감정주의’의 변형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보수가 정의와 결부되어 ‘선진자유자본주의’의 기틀이 되고 있는 것은 보수가 진보 측에서 비판하는 ‘부정의’에 끊임없이 귀 기울여 흡수·수정하는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진보라고 주장을 하는 자도 보수주의자들이 급진적이고, 불안을 조성한다는 비판에 대응하는 정치(精緻)한 논리를 전개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지금 보수와 진보는 서로 무슨 적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 같은 양상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양측은 모두 상대방의 비판을 받아들이면서 미래를 향하여 종합·지향하는 ‘사상체계’ 정립이 필요하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정치가 지역감정에서 벗어나고 서로 상생·화합하는 정치풍토의 조성에도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지금 양자는 서로 대립할 것이 아니라, 개혁적이면서 ‘법적안정성’을 중시하는 보수, 자유민주주의·개인적 창의를 존중하면서 개혁을 행하는 진보가 필요하다.


송희성 전 수원대법대학장, 행정대학원장, 논설위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