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가 단단히 뿔이 났다. 정부가 내년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5개 건설단체 관련 단체장은 정부의 SOC예산 삭감 방침에 거세게 반발하며 예산확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건설업계가 뿔이 날만도 하다. 한발자국 더 들어가 보면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표현이 옳다. 새정부가 주택, 부동산은 물론 공공부문과 민자사업을 옥죄고 있는 가운데 지속적인 저유가로 해외건설분야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지역 건설업계도 여기저기서 한숨과 탄식소리가 깊어만 가고 있다.

첫째로 공공분야 투자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기획재정부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SOC예산은 2016년 23조7천억원, 2017년 21조 8천억원, 2018년 20조 3천억원, 2019년 19조 3천억원, 2020년 18조 5천억원으로 연평균 6%씩 감소하도록 짜여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후 제시한 내년도 SOC예산 요구액은 18조 7천억원에 그쳐 국가재정운용계획 대비 21.1%인 무려 5조원이나 급감했다. 이후 기재부는 여기서 추가삭감해 17조 7천억원을 최종 확정했다.

결국 정부는 내년 총지출을 28조원 이상 늘리면서도 SOC 예산은 올해 대비 20%, 4조4천억원이나 삭감했다. 4조4천억원은 조달청이 1년간 집행하는 신규 공사 입찰금액의 약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따라서 주택, 부동산에 이어 공공분야에 이르기까지 내년 국내 건설시장은 사상 초유의 위기상황에 직면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SOC예산 축소는 고용시장과 함께 경제성장률을 주도해 왔던 건설투자를 급속도로 위축시킬 것으로 전망돼 일자리창출과 3%대 경제성장률 전망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실제 새 정부 들어 고용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겠다고 했지만, 8월 청년실업이 18년 만에 최악이다. 취업자 수도 7개월 만에 곤두박질쳤다.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9.4%로, 8월 기준으로 1999년 이후 최고치다. 체감실업률(22.5%)도 2년 만에 가장 높다. 취업자 수 증가 폭도 21만2000명에 그쳤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정부의 SOC축소로 건설투자가 위축되면 연간 1만5천명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앞으로 4년간 매년 0.53%P의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하다.

둘째로, 민자부문도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기간교통망 공공성 강화’를 국정과제로 제시한 이후 충격에 빠졌다. 서울~세종 고속도로의 민자구간이 재정사업으로 전환된 것을 비롯해 민자도로의 통행료를 낮추기 위한 ‘반강제적’리파이낸싱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자사업의 수익성은 더욱 악화되고 정부 신뢰가 깨지면서 신규사업 발굴도 어려워졌다.

셋째로, 그동안 건설업에서 나름대로 버팀목 역할을 해온 주택분야도 갑작스레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최근 8.2대책을 비롯한 두 번의 부동산대책은 실수요자들의 구매력을 감소시켜 미분양과 미입주에 대한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일한 돌파구로 기대했던 해외부문도 녹록치가 않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겼던 국제유가가 2014년 하반기 40달러대로 급락한 이후 중동지역 산유국들의 대형공사 발주가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660억달러에 달했던 해외건설 수주액은 지난해 282억달러로 감소했으나 극적인 반전은 어려울 전망이다.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총지출은 올해(400.5조원) 대비 7.1% 약28조4천억원 늘어난 429조원으로 편성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어선 이래 다시 한번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분야별로는 복지예산을 사상 최대규모(12.9%, 16조7천억원)로 늘린 것이 두드러졌다. 일자리와 국방, 교육분야 예산도 크게 확대편성했다. 반면 SOC와 문화, 체육, 관광, 환경, 산업·중소기업, 에너지분야 예산은 구조조정을 통해 삭감했다.

상황이 이렇자 건설업계는 경영난에 따른 구조조정을 검토하거나 줄도산을 걱정하고 있다. 반대로 공공공사 발주기관들은 건설업체들이 신규 인력을 고용할 경우 입찰 때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어 건설업계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만29세 이하 신규인력을 고용한 건설업체에 철도공사 입찰 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종합심사낙찰제 방식이 적용된 철도공사에는 만29세 이하 청년기술자 배치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조달청 역시 건설업체 정규직·비정규직 비중에 따라 입찰 때 가·감점을 주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새정부 국정운영5개년계획에 따른 것이다. 한마디로 건설업계 일감은 줄이면서 일자리는 늘리라는 것이다. 앞뒤가 맞지않는 건설정책이다. 국민 기본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고, 일자리 늘리고, 경제성장률을 3%대 유지해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 진정한 복지다. 따라서 SOC예산 축소는 철회돼야 마땅하다.

표명구 경제부장 / 고양·김포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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