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미술계를 들뜨게 한 뉴스가 전해졌다. 101세인 김병기화백이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예술원 회원이 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예술가들이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영예이다. 김병기화백을 회원으로 선출한 예술원의 결단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100세가 넘는 나이까지 왕성히 현역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김병기 화백의 예술적 성과도 경이로운 것이었다. 김병기 화백은 누구인가? 1916년에 태어나 1세기가 넘는 세월을 오로지 미술인으로 살아온 그의 몸과 정신에는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수많은 사건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것도 아주 명료한 기억으로 살아 숨쉰다.

김병기, 방랑자, 2013년, 캔버스에 유채, 155x122cm, 작가 소장.
그는 평양의 갑부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근대기 선구적 유화가의 한 사람이었던 김찬영 이었다. 골동취미까지 지니고 있었던 아버지 덕분으로 김병기는 아주 자연스럽게 당시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안목을 지닌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의 성장과정에서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등과의 교류는 더욱 각별하다. 이중섭은 평양종로보통학교와 도쿄의 문화학원을 같이 다닌 절친한 친구사이였다. 심지어 적십자병원에서 행려자로 사망한 이중섭의 죽음을 갈무리 한 이도 김병기였다. 김환기, 유영국과는 한국 추상미술의 기초를 다진 주역으로서 함께 활동했다. 1950~60년대 중반까지 김병기는 뛰어난 필력으로 추상미술을 강론하고 한국적 추상미술의 가능성을 설파한 중요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1965년 상파울로비엔날레 참가를 계기로 한국을 떠나 고국에 다시 알려진 것은 1986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동안 그는 미국 서부에 은거하며 그림을 그렸다. 화가로서, 이론가로서 그는 그림 그리는 일과 그림 그리는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매일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감각을 확인하고 그것을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표현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이를 기리는 전시가 2014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되었던 ‘감각의 분할(The Distribution of the Sensible)’展 이었다.

2013년에 제작된 이 그림은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해 질문의 끈을 놓지 않은 자신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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