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간 '원색적 막말·인신비방'에 싸늘해진 유엔총회장
'불량국가'로 지목된 베네수엘라 등엔 "연대하자" 제의
아일랜드·필리핀·싱가포르, 북핵 규탄…총회장서 박수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거친 공격에 전력했다.

 핵 개발 프로그램의 자위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미국을 비판했던 역대 기조연설의 메시지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9일 기조연설에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조롱하고 북한 '완전 파괴'를 언급한 데 대해 맞불을 놓은 셈이다.

 이날 오전 9시께 숙소인 유엔본부 앞 호텔을 나서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을 지켰던 리용호 외무상은 자신의 연설순서 직전 총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성남 유엔주재 북한 대사가 동행했다.

 리 외무상은 총회장 연단에 오르자마자 "4일 전 신성한 유엔회의장을 어지럽힌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의 연설을 논평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망발과 폭언을 늘어놨기에 나도 같은 말투로 대답하는 게 응당하다"고 작심 발언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자기의 망언으로 취임 8개월 만에 백악관을 수판알 소리 요란한 장마당으로 만들었고 유엔 무대까지 돈과 칼부림밖에 모르는 깡패들의 난무장으로 만들려 했다"면서 "권모술수를 가리지 않고 한 생을 늙어온 투전꾼이 미국 핵 단추를 쥐고 있는 위험천만한 현실이 국제평화에 최대 위협"이라고 원색적인 인신공격을 가했다.

 리 외무상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과대망상이 겹친 정신이상자, 미국인들에게마저 고통만을 불러오는 최고통사령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짓말의 왕초', '악통령'(악의 대통령)이라고도 지칭했다.

 영어로는 'Commander in Grief', 'Lyin King', 'President Evil' 등으로 동시 통역됐다.

 '트럼프 비난' 일색의 기조연설에 유엔총회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기조연설 종료 때의 의례적인 박수를 제외하면 20분 분량의 연설 내내 무거운 기류가 총회장을 감쌌다.

 리 외무상은 베네수엘라, 쿠바, 시리아를 일일이 거명하면서 연대감을 내세웠지만, 대부분 유엔 회원국들은 북한에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아일랜드의 시몬 코브니 외무장관은 "제 바로 다음이 바로 북한 외무상의 기조연설 순서"라며 한반도 긴장완화를 촉구하자, 총회장에서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리 외무상에 앞서 연단에 오른 알란 카예타노 필리핀 외무장관·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무장관 등도 "핵 보유의 이익은 없다", "북한의 도발을 강력히 규탄한다" 등의 메시지를 내놨다.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도 유엔총회장의 좌석은 절반가량 채워졌다.

 국가별 기조연설이 이어지는 유엔총회 일반토의가 마무리 단계인 데다 주말인 점을 감안하면 '북핵 이슈'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은 관심이 반영된 셈이다.

 시종 거친 리 외무상의 발언 내내 일부 참석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단상을 지켜봤으며 아예 외면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유엔주재 차석대사와 실무진이 북한 외무상의 기조연설 동안 자리를 지켰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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