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민속문화 (33)굿·세시풍속·민요의 역사

민속은 인간의 공동체적 삶에서 형성되고 일상생활에 밀착된 생활문화이다. ‘경기 천년 민속’이라고 하면 ‘경기’라는 근린성에 기반한 지역성과 경기지역이 수도권이 된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역사성을 아우르고 있다. 하지만 천년의 세월 동안을 통찰할 수 있는 경기지역의 생활문화사를 사료를 통해 접근하기에는 남겨진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과거 문자기록을 할 수 있는 식자들에게 생활문화는 기록의 대상으로서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편린이라도 있다면 왕궁 및 지배층의 생활 일부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경기도 민속관련 자료를 보면 고려시대에 편찬된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노무편'에서 보여지는 개성지역 무속이나 '신증 동국여지승람 풍속편' '송도지' 등이 있다.

민속은 지역의 자연 및 인문환경 속에서 토착화된다. 경기지역은 서해안을 끼고 있으며 동쪽은 산지가 많다. 중앙에는 한강이 남한강과 북한강의 지류를 모아 바다로 향하고 있으며 서해안에는 어업이 발달하여 수산물의 공급처가 되었으며 김포, 여주, 이천, 안성, 평택, 철원 등지의 평야에서는 수도작, 산지에는 밭농사가 발달하였고 도시주변에는 상업작물이 많이 재배되었다. 경기미는 품질이 좋으며 특히 여주, 이천, 김포산이 유명하며 소사의 복숭아, 수원의 딸기, 안양의 포도는 경기삼미로 알려졌었다. 경기도에서는 밀국수나 냉면 보다 제물국수와 수제비를 많이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경기도에서는 젓갈을 넣어 김치를 만들었으며 음식은 간이 세거나 맵지 않은 편이다. 경기도의 민가는 ‘ㅁ’자 똬리집, ‘ㄷ’자집, 한 용마루아래에 앞뒤로 방을 배치한 양통집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며 도서지역 북부인 백령도는 ‘ㄱ’자 구조의 집이 많다. 내륙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 구조는 튼 'ㅁ'자이다.

경기지역은 고대에는 한강 유역에 한성 백제가 있었으며 고려시대에는 개경, 조선시대에는 한양이 수도로서 왕조국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왕조국가에서는 도성 근처에 왕릉, 도성 방어를 위한 산성, 도로 및 뱃길이 경기도를 이어 교통과 물류, 장시가 크게 발달하였다. 많은 귀족과 지배층이 경기지역을 근거지로 하며 국가로부터 하사받은 사패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오늘날 많은 권문세가들의 종가와 선산이 경기도에 밀집되어 있는 것도 이런 연유를 두고 있다. 경기도의 명산대천에는 제단이 있어서 국가제사가 행해졌다. 개성, 장단, 마전, 적성, 양주에서는 대사인 사직제, 개성 송악산에서는 중사인 서악제, 목청전에서는 속제인 진전향, 장단에서는 중사인 서독제와 소사인 서명산제, 마전에서는 중사인 역대 시조제(숭의전), 적성에서는 감악산에서 소사인 북명산제, 양주에서는 소사인 남대천제(양진사)와 진전향(봉선전)이 있었다. 양진사는 광진 아래에서 용왕에 제를 지냈으며 신라 때부터 북독이라 일컬어지며 이어져왔다. <고려도경>에는 송악 정상에 성황당, 대왕당, 국사당이 있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황(城隍), 대왕(大王), 국사(國師), 고녀(姑女), 부녀(府女)의 당이 있었다고 전한다. 대사인 사직제는 2월과 8월 상술일, 중사인 석전향, 악해독제는 2월과 8월 상정일, 소사인 명산대천제는 2월과 8월 상순, 소사인 성황제와 여제는 3월 상순, 7월 중순에 지냈다. 오늘날 민간에서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는 감악산 빗돌대왕비, 관악산 연주대, 북한산, 군자봉 성황사지 등지로 기도자들의 발길이 잦다. 개성 덕물산은 최영장군 신사로 유명하여 분단 전에는 경기도의 많은 무당들이 이곳을 왕래하였다. 서울 광진 아래는 용왕기도처로 근래까지 널리 알려져 무당들이 왕래하였다.

경기도의 굿은 한강을 경계로 이남과 이북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강 이남은 남무인 화랭이와 미지인 무녀의 결합에 의해서 굿이 구성되는 산이굿이 행해졌다. 화랭이인 산이들은 세습적으로 굿에 필요한 예능을 전수받은 전문예술인이다. 이들의 음악은 우리 국악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들은 경기도 광주에서 수원, 인천, 부천 등지까지 한강 이남에서 단골판을 형성하며 활동하였다. 이들에 의해서 주관되는 부천 장말도당굿은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산이굿의 음악과 창법은 시나위권의 육자배기토리에 속한다. 한강 이북지역은 서울굿의 영향이 강하다. 의정부를 포함한 양주지역의 굿은 서울굿과 같은 굿문화권에 속한다. 서울 무당들이 임진강을 건너 개성 덕물산에 가서 최영장군 ‘문고(장군당의 당주가 찍어주는 도장을 백지에 받음)’를 받아왔는데 의정부의 옛 만신들도 이러한 풍속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월남한 개성 무당들이 거주했던 파주에서 개성굿을 전수받은 지간난(개성굿보존회 회장)의 굿 역시 서울굿과 대동소이하다. 개성굿이 서울굿과 유사한 것은 개성과 서울의 근접성, 한양천도로 인한 개성문화의 한양으로의 이동도 추론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보다 실증적 연구를 통해 입증될 필요가 있다. 같은 서울굿이라고 해도 한양성곽 주변에서도 구파발본, 노들본, 각심절본과 같이 약간씩 차이가 있었듯이 경기도 이북지역에서도 미세한 다양성들은 존재했을 것으로 보이나 서울에서 개성까지는 한양굿의 문화권으로 지역적으로 대동소이한 경향이 있었다. 다만 경기 이북지역으로 갈수록 황해도굿적인 요소가 섞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리적 인접성에 의해 황해도굿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개성굿은 임진강, 강화도, 서해 북부 도서 등지에서도 영향이 보여진다. 경기도에서는 마을굿을 주로 ‘도당굿’이라고 부르는데 과거에는 상당수 마을에서 도당굿이 행해졌다. 또한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초상이 나면 장례를 치루고 삼우제가 되면 망자의 극락왕생과 환자가 누웠던 자리를 걷어낸다는 의미의 천도굿인 자리걷이를 하였다.

경기도 대부분의 자연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냈으며 현재도 상당수의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고 있다. 동제당은 과반수 이상이 산제당이며 산신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밖에 서낭신앙, 용왕신앙, 군웅신앙 등이 보여진다. 제당은 돌탑이나 입석보다는 수목형태가 많으며 주변에 터주가리를 세워놓는 것이 특징이다. 제일은 10월 상달에 집중되어 있다. 동제를 고사식이 아니라 도당굿으로 하는 경우도 흔하였다. 경기도는 타 지역에 비해 가신신앙에 대한 숭배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가을고사를 지내고 이웃과 떡을 나누어 먹는 풍습은 흔한 일상이다. 양옥이 들어서기 전에는 안방이나 안방다락에는 삼신, 대청에는 성주, 광에는 대감독, 뒤곁에는 터주를 모셨다. 삼신에는 자루에 쌀을 넣어 매달고 위에는 고깔을 씌워놓은 형태, 대청 대들보 기둥 가운데 동자주에 흰종이를 오려 붙이는 형태가 많이 나타난다. 터주는 터주가리로 모시는 형태가 내륙에서 일반적이었다. 터주가리 외에도 집안의 사연에 따라 업가리를 함께 모셔놓는 집도 있었다. 내륙과 달리 인천, 강화도 등 서해안 지역은 황해도와 유사한 형태가 보여진다.

경상도에 오광대놀이, 황해도에 탈춤이 있다면 같은 가면극이라고 해도 경기도에서는 산대놀이라고 하며 양주별산대놀이가 유명하다. 세시의례로서 농민들이 행하는 집단놀이들도 보인다. 이천, 용인 지역의 거북놀이, 대보름에 용인, 광주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동홰놀이 등이 주목되며 경기도에서는 대보름에 줄다리기, 달맞이와 달집태우기도 널리 행했다.

서해안에서는 풍어와 해상안전을 비는 풍어굿과 어로의례가 발달하였고 갯가에서 부녀자들이 작업하면서 부르던 나나니타령, 군음, 주대소리, 뱃일을 하면서 노젓는 소리, 바디질 소리, 배치기 소리, 강화도에서는 시선뱃노래 등이 어업요로서 어민들의 고된 일상을 달래주었다. 경기도 민요는 종류가 다양하여 노동요, 상여소리, 달구소리와 같은 의식요가 많으며 내륙지역에서는 논농사 및 밭농사와 관련된 노동요가 발달하였다. 김포 통진 두레놀이, 파주 금산리 농요, 광명 농요 등이 현재 전승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정월에 풍물패가 가가호호를 돌면서 축원해 주는 ‘고사반’ 소리도 두레패나 유랑예인들에 의해 발달하였다. 경기도의 민요는 황해도와 인접한 북부는 황해도 수심가조, 강원도 인접 지역은 메나리조, 한강 이남은 남도와 같은 육자배기의 선법이 나타난다.

이상에서 필자 및 각 방면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수렴하여 경기도 민속을 소략해 보았다. 경기 천년의 민속이라고 하면 통시적, 공시적 접근을 통해 밀도 있게 조사되어야 하나 현재 성과가 부족하다. 시군 단위의 민속을 상세히 조사하여 보다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을 통해 경기도의 민속지도가 구축되어야 한다. 경기 천년의 민속에 있어 당면한 과제라면 차후 천년의 관점에서 현재를 어떻게 기록으로 남기느냐가 중요하다.

김덕묵 한국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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