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사는 A씨는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출근 한다. A씨는 스스로를 ‘컴알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걸을 때,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건물 안에 들어설 때, 사무실 내에서 일을 할 때,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스마트폰은 그의 손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이 방문한 사이트들은 자신만 알고 잊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 그의 일상생활 자체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누군가에게 제공하는 과정임을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요사이 플랫폼이라는 낱말이 주목받고 있다.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는 공통의 기반을 의미한다. 애플,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올해 세계 시가총액 1위부터 4위까지의 회사는 더 이상 석유회사나 금융회사가 아니다. 모두 온라인 플랫폼을 가진 기업들이다. 이제는 플랫폼이 없는 온라인 생태계를 상상하기 어렵다. 온라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어떤 업종이든 플랫폼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들어섰고 플랫폼을 보유하지 않고서는 일정 규모 이상 성장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비즈니스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지배력이 전방위로 확장되어가고 있다.

플랫폼의 특징들 중 하나는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점점 고도화된다는 것이다. 플랫폼을 성장시키는 영양분은 데이터다. 공무원이 전자정부에, 교사가 NEIS에, 의사와 간호사가 병원 관리 시스템에 입력하는 데이터는 옛날 일이 되어가고 있다. 데이터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우리들 자신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플랫폼은 스스로 데이터를 빨아들인다. 일단 자리만 잡으면 플랫폼의 진화에는 가속이 붙기 마련이고, 그들이 차지하는 기득권은 후발 주자에게 ‘넘사벽’이 된다.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은 단순한 민간 사업자가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권력이 되어가고 있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불특정 다수가 만들어내는 공공 데이터를 사유물인 플랫폼이 시장에서의 기득권을 확보하는데 사용하는 현실이 과연 정당한가. 깊이 있는 연구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적절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시급하다. 쉽지 않은 숙제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보다 건설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갖춘 대안이 본격적으로 고려돼야할 시기다. 공공이 지배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시민들의 안전, 영유아보육, 교육, 고령/만성질환자들을 위한 요양 시설 등 공공 복지 영역에 거대한 플랫폼 수요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분야에는 민간 플랫폼이 작동하기 어렵다. 그런 공공 시설들을 데이터 제공자로서 참여시키기에는 막대한 IoT 인프라가 필요하고, 여러 가지 행정 규제에 대한 대책과 다양한 분야의 연구개발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스마트 홈, 스마트 데이케어 등 스마트 **의 기초기술 개발은 이미 전세계가 뛰어들고 있는 분야다. 우리나라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연구개발비 집중 투자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런 기술들은 연구개발만으로는 구현되기 어렵고, 구현할 수 있다 해도 실험실에서의 연구개발 개념으로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실제로 데이터를 생성해낼 수 있는 집, 보육시설, 학교, 병원, 요양시설 등 공공 시설이 합법적으로 연구개발의 장(場)이 되어야만 과학기술로 무엇을 해야 할지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플랫폼을 진화시킬 수 있는 노하우가 된다. 그렇기에 지역 사회의 행정과 주민의 참여, 고도의 자체 과학기술 역량이 융합되면 글로벌 경쟁력까지도 가질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복지는 돈이 마냥 들어가기만 하는 것이라는 통념을 이제 버려야 한다.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잠재하고 있다. 일정 지역의 집, 요양원, 보육시설 등을 스마트 테스트베드로 만들고 어떤 형태로든 청년들이 들어가 일할 수 있게 할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들 스스로 새로운 서비스 수요를 찾아낼 것이다. 현장에서 그들의 기업가 정신을 북돋워 주고 아이디어가 현실화될 수 있도록 돕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청년 창업이다.

발상을 전환하여 영리하게 과학기술의 진보를 활용하면 새로운 마당이 열릴 수 있다.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게 해주어야 할 일이며 중앙정부가 아닌 지역 사회가 시작해야 할 일이다. 경기도가 아니라면 어느 지자체가 그런 길을 열 수 있을 것인가.

정택동 서울대 교수, 융기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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