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의 이름을 거명할 때마다 우리는 그녀가 과연 ‘문학가인가 화가인가’ 의문이 먼저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근대 여성 문인 1기생인 나혜석은 일본에 유학하고 이후 최초로 유럽여행을 감행했던 대표적 신여성으로서 한국 근대문학을 꽃피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른바 자아실현을 선구자적으로 발현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여성 문인으로 작금에 이모저모로 역사적 평가를 받는 형국이 되었다 현모양처를 비판하며 자기실현을 적극적으로 구현한 ‘이상적 부인’의 모델을 자신의 글을 통해 피력했던 것처럼 나혜석은 실제로 ‘이상적 부인’이 되기 위해 유학을 떠났는데, 그것은 본래 문학을 전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혜석의 예술 활동은 미술보다는 문학 분야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미술가 나혜석은 남겨진 자료의 관점에서 보면 문학가 나혜석의 비중에 못 미친다고 한다. 문학가로서의 비중이 더 크다는 것은 단순히 자료가 많이 남아있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나혜석문학 연구자들에 의하면 나혜석은 페미니즘 문학가로서 확고한 위상을 획득하였을 뿐 만 아니라 문학가로서의 면모가 더욱 부각되어 나혜석 전집을 내는 등 정월 나혜석 기념사업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찰나, 드디어 ‘나혜석 문학상 제정’이라는 획기적인 사업 구상에 이은 실천 조짐이 지역문인들에 의해서 활발하게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불과 2주 전, 수원문인협회에서는 <나혜석 문학상 제정 운영위원회>를 결성하고 위원장 박병두 회장을 필두로 최동호, 서정자, 오세영, 김윤배 시인 등 해박한 식견의 전문가들로 운영 위원들을 구성하였고, 현 나혜석 기념 사업회 유동준 회장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고 구체적인 사업 실천 계획에 진일보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결과물은 당장 수원문학의 날로 제정한 금년 10월 10일에 수원문학인의 집 2층에는 나혜석기념자료관 현판식과 함께 제2회 나혜석 문학상을 시상한다.

나혜석은 여성해방의 혁명가요, 순교자였다 구습에 얽매인 여성의 인권을 해방하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활동하고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에 이르러 더욱 보편화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그녀의 이상과 가치는 ‘인형의 가’ 마지막 연에서 노래한 대로 “많은 암흑 횡행할지니 / 다른 날 폭풍우 뒤에/ 사람은 너와 나”라는 예술가로서의 전향적 자세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최근 발견된 나혜석의 한글 편지는 “나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유언처럼 비감 어리게 전해지고 있다. 이제는 그 문화의 후예들이 답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이에 후세인들이 나혜석 바로 알기 심포지엄 발표와 문학 관련 논문을 유수 문예지에 게재함은 물론이고 그의 문학적 가치와 의의를 논하고 그 뜻을 계승하여 해마다 전국적인 공모로 적격자를 발굴하여 상찬한다는 것은 더 없이 귀중하고 보람된 일이 될 것이다. 이를 기회로 나혜석의 숨겨진 시와 ‘충만한 말’의 세계를 더욱 더듬어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시편들은 만물의 변전과 무상, 허무 의식과 소멸에의 두려움도 있지만, ‘출산’에 관한 기발한 시도 있다 출산하고서 병원 침상에서 스케치북에 썼다는 여성 최고의 고통과 고귀한 헌신이라는 미화도 신비주의도 없는 그녀의 적나라한 언어의 마술을 이제는 쉽사리 엿볼 수 있는 지평도 열리게 되었음은 덤으로 평가되어 마땅하다. 모쪼록 수원문협이 야심차게 발기한 ‘나혜석 문학상 제정’의 전도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이제는 남성 중심의 역사(history)에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쓴다는 것과 자신의 초상을 그린다는 것(herstory), 여기에 ‘나혜석’이란 신여성의 이름으로 나혜석 문학상을 제정하고 수여한다는 데 그 상이 갖는 함축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다.

윤형돈 시인, 수원문인협회 문학평론 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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