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혀/권정현/다산책방/348페이지



한중일 세 나라가 ‘세상에 없는 요리’로 맞서는 소설,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칼과 혀’가 찾아왔다.

칼과 혀는 1945년 일제 패망 직전의 붉은 땅 만주를 배경으로 전쟁을 두려워하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와 그를 암살하려는 중국인 요리사 ‘첸’, 조선인 여인 ‘길순’ 3명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권정현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첸은 체구가 작고 깡마른 중국인으로 등은 꼽추처럼 목과 붙어 있는 볼썽사나운 생김새를 지니고 있지만, 천재 요리사이자 비밀 자경단원이다. 그가 독살하려는 자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야마다 오토조)로, 등장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사령관 암살 계획을 세우고 황궁 주변을 서성거리던 첸은 헌병대 간부에게 잡힌다. 궁정 주방에서 일하기 위해 온 요리사라고 항변하는 첸 앞에 사령관 모리가 나타난다. 총살형으로 죽게 될 거라는 헌병대 간부의 위협과 달리 뜻밖에도 사령관 모리는 첸이 광둥 제일의 요리사라는 걸 증명하도록 목숨을 건 불가능한 요리 시험을 내린다.

요리 재료는 단 한 가지. 기름은 물론 어떤 양념도 사용해선 안 된다. 조리기구도 제한한다. 오로지 재료를 익힐 불과 음식을 다듬을 칼의 감각에 의지해야하며 요리 시간은 단 1분에 불과하다.

첸은 칼과 한몸이 돼 구운 송이버섯 요리 ‘향식(餉食)’을 만들어 죽음을 면하고 장교식당에서 일하게 된다. 첸은 점점 비밀 자경단원이 아닌 요리사로서 모리에게 궁극의 맛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런 첸의 요리에 자신도 모르게 점점 길들여져가는 모리는 군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풀려나 첸의 아내가 된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조선 여인 길순을 궁으로 들인다. 비로소 날카롭고도 위태한 삼자 대결의 새 국면이 펼쳐진다.

권 작가는 “모리(야마다 오토조)는 실존인물이다. 마지막 관동군 사령관으로 역사에 기록된 그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 겁쟁이였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실화가 내게는 소설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때때로 오토조가 되어 생각했다. 나에게 백만의 관동군이 있다. 본토엔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황제가 항복했다. 150만 이상의 소련군이 국경을 넘어오고 그 모든 장면은 꿈처럼 아침마다 의식을 뒤흔든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주 천천히, 부관이 가져온 아침식사를 들며 다음 할 일을 생각해보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칼과 혀는 작가의 동아시아적 상상력과 예술의 만남으로 독자들에게 한중일 세나라의 캐릭터를 뜨겁고 생생하게 전달할 것이다.

김수언기자/soounchu@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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