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다문화사회로의 변화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본다. 이제 인적교류에서 비롯되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는 세계 모든 나라에 선택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따라서 대한민국도 문화적 다양성에서 기인하는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과 화합을 이루어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감나무가 빨간 감들을 가지마다 아름다이 달고 있던 어느 가을날, T나라에서 온 W를 만났다. 보기만 해도 슬픔과 불안이 눈에 가득했다. 지난 밤 남편에게 폭행을 당해 몸과 마음이 매우 피폐해진 듯했다. 어디선지 작은 새 한마리가 날아와 가지에 앉았다. 그녀의 어깨가 마치 그 새처럼 얇았다. 그리고 붉은 홍시 같은 눈물이 그녀의 가슴을 흘러내리는 듯 보였다.

그녀는 여성결혼이민자로 한국에 왔고 아들 둘을 낳아서 남편의 무서운 학대를 견디면서도 혼신을 다해 양육하고 있는 어머니이다. 자신은 어차피 희망 없는 삶을 살아가더라도 두 아들 만큼은 버려지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하늘을 향한 그리움에 설레 오는 9월의 바람을 아파하며, 그래도 자신의 내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두 아들을 훌륭히 키워 잘 살아가는 것을 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가을나무들이 겨울나기를 위해 낙엽으로 분신을 떨어뜨리듯 자신도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 스스로 낙엽이 되어 자녀들을 지키겠다고 했다.

평상시에 그녀의 남편은 온순하다고 한다. 일을 하기 싫어해 돈은 잘 벌지 못하지만 폭력적이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술만 취하면 다른 사람이 되어 폭력을 행한다고 한다. 번복되는 일상이 너무 지치고 힘들지만 아이들의 아버지이니까 참으며 기다린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다행히도 두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어머니 말도 잘 듣는 모범생이다. 그 고마움으로 하루하루를 애써 비상하며 금빛 들판을 꿈꾼다고 했다. 먼 곳을 돌아 가을의 언덕에서서 황금빛 들판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저 황금빛 물결이 오늘의 탐스런 결실을 위해 한 여름의 폭염을 견디고 비바람을 견디며 묵묵히 꿈을 키워 왔기에 오늘의 저토록 자랑스런 결실을 가져오지 않았던가. 사람의 삶도 이와 같으리라. 견디고 인내하며 역경을 이겨낸 자만이 결승선에 서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에 와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고 안간힘을 써 왔던 W는 비록 지금은 지치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훗날 가족들과 함께 친정을 방문하여 한국의 문화를 잘 전하고 한국에도 친정 나라의 문화를 전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요리를 아주 잘 한다. 남편도 그녀의 음식 솜씨만큼은 인정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소망은 친정나라와 대한민국의 요리를 공부하여 양국의 요리사 자격증을 받아 훌륭한 요리사가 되는 것이다. 요리를 통해 양국의 문화교류는 물론 자녀를 외교관으로 만들어 양국을 위한 다리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아마도 그녀와 남편을 나누어 닮은 아들들은 엄마나라와 아빠나라의 문화교류의 전령사가 될 것이라는 그녀의 바람처럼 잘 성장할 것이다.

요즘 그녀는 남편이 술보다는 다른 식 습관을 갖도록 다양한 요리를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맛있는 요리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듯이, 그녀의 요리처럼 개인의 취향이나 개성을 서로 존중해서 소통의 길이 더 넓게 열리고, 다문화사회에도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각각의 문화의 가치와 세계문화의 흐름을 수용하는 상생의 길이 열리기를 소망해본다.

서종남 한국다문화교육상담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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