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계속적으로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쏘는 것을 보면 심상치 않다. 필시 저러다가 궁지에 몰리면 벼랑끝 전술을 택하지 않을까 두렵기 조차 하다. 많은 전쟁이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경험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 왔기에 하는 얘기다. 더더구나 지금 우리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으나 아직은 안정적이지 못하다. 적들의 기습도발의 최적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기습적인 도발에 즉응적(卽應的)으로 대처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기습적인 도발은 귀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것이다. 기습공격은 어느 누구도 막아 낼 수 없다. 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가장 야만적이고 가장 잔인한 군사적 도발을 시도 때도 없이 저지르는 적을 상대하고 있는 우리 군의 경우에는 더더욱 철저한 방어 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오래 전 천안함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당시 미 타임지(誌)는 “현재 한국은 이마에 총알구멍이 난 시신을 보면서 사인(死因)이 심장마비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과학수사대의 수사관과 같다”고 하면서 이는 “그 방 안에 총을 가진 용의자가 사악한 암흑가의 보스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전쟁은 아직도 결코 끝난 적이 없는데도” “외부 세계는 북한과 맞설 배짱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라고도 꼬집었다. 얼마나 부끄러운 지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역시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전쟁과 맞설 배짱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어느 누구 한사람“그렇다”라고 나설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라는 말이 있다. 평화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전쟁억지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뜻도 될 것이다. 그것은 평화를 담보해 주는 지렛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만 있으면 뭘 하나? 적과 싸울 의지가 없고 용기가 없다면 그 힘도 무용지물이다. 타임지는 이점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속담도 있다. “명예롭게 유지될 수 없는 평화는 이미 평화가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까지 북한의 눈치만 보면서 평화를 구걸하는 정책으로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명예롭지 못한 평화를 평화로 착각하면서 말이다.

속담으로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였지만 필자는 이를 바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각오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전쟁을 각오할 마음가짐이 아니고서는 전쟁을 억지할 수 없겠다 싶어서 하는 얘기다. 그렇다면 전쟁할 각오란 무엇인가? 죽을 각오다. 죽을 각오 없이는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것이 오늘의 우리 형편이다.

천안함 사태가 일어난 다음날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육군 참모총장 출신의 이진삼의원은 합참의장과 해군참모총장을 향해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사령관들은 지금 군번줄을 목에 걸었는가”라고. 물론 돌아온 대답은 “아무 누구도 목에 걸지 않았다”였다. 이에 대해 이의원은 군복을 입고 군번줄을 매지 않은 것에 대해 후배 사령관들에게 그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고 호통을 쳤다. 왜 그랬을까?

이 의원은 군인이 군번줄을 목에 걸었느냐 아니냐는 지금 당장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느냐 아니냐를 상징해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기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기 위해 물었던 것이다. 목에 군번줄을 매고 시작한 하루의 출발이야 말로 얼마나 고귀한 출발인가를 말해 주고 있는 이의원의 지적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십자가를 메는 행위와 같다는 자못 의미심장한 가슴 아픈 지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이 지구상에서 가장 열악하고 궁핍하고 폐쇄적이지만 핵무기를 가진 호전적인 동족과 마주하면서 싸우고 있다.

천안함 사태 당시에도 ”북한 공격설을 예단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있었고 북한의 소행으로 들어 날까봐 조바심치는 모습을 보여준 정치인들도 있다. 통일이 되면 북한의 핵쯤이야 우리 것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일부 어리석은 국민까지도 있다. 이것이 우리현실이다. 지금도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가 대한민국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구실로 국민들의 경각심을 잠재우려는 정치인은 없는지 살펴 볼 일이다.


김중위 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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