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는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에 명문화되었고, 이듬해인 1949년 7월 지방자치법이 제정·공포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정치 불안정을 이유로 실시하지 않았고, 한국전쟁 중인 1952년 4월 25일 지방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이승만 대통령 재집권에 반대하는 국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지방의회를 이승만 친위 세력으로 구성하기 위해 선거를 실시한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본래의 의미가 아닌 권력자의 정권 연장 수단으로 지방선거가 이용됐지만, 4.19 혁명 이후인 1960년에는 진정한 의미의 지방선거가 실시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부는 지방의회를 모두 해산시켜버렸다. 그 이후 전두환·노태우 정부까지 지방선거는 실시되지 않았다.

1990년 당시 평민당 김대중 총재가 ‘지자체 전면실시’ 등을 요구하며 13일간의 단식투쟁 등 우여곡절 끝에 지방선거 도입을 결정하였다.

1961년 박정희 군부로 중단된 지방선거가 1995년 실시되기까지 무려 34년이 걸린 것이다.

왜 군부는 제헌헌법에도 명시된 지방자치제도를 실시하지 않은 것인가?

그 답 역시 헌법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는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이고 일반적인 원리를 나타낸 것이고, 지역 주민이 선출한 대표자를 통해 그 지역의 행정과 사무 등을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지방자치제도는 민주주의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자치는 독재 정부를 위협하는 제도인 것이다.

내년이면 지방자치제도가 실행된 지 24년으로, 강산도 두 번 이상 변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그럼 지방자치는 취지에 맞게 잘 실행되고 있는가.

지방자치의 실행 정도는 지방에 중앙의 권한이 얼마나 이양됐는지로 판단할 수 있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당시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는 특별시와 광역시, 도, 시·군·구로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특별자치시와 특별자치도가 추가되었으며 울산은 광역시로 승격되었다.

문제는 광역시급의 기초단체가 발생하면서 급격히 증가하는 지방행정 수요를 현재의 지방자치제도로는 못 따라간다는 것이다. 수원·창원·고양·용인시는 인구 100만 명을 넘겼으며, 성남은 10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즉, 100만 명 이상의 대도시와 인구가 적은 소도시가 동일한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방재정 자립도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전국 243개의 지방자치단체 중 약 63%는 재정자립도가 30% 미만이다. 50%이상의 재정자립도를 보여주는 지자체는 28개이며, 이 중 3개만이 70%이상의 재정자립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열악한 재정자립도는 8대2라는 국세와 지방세의 기형적이고 불합리한 비율 때문이며, 이는 지방자치의 확대가 아니라 여전히 중앙 정부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6대4까지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비율 조정 시, 전국의 지방세는 현재 84조원에서 170조원으로, 경기도의 경우 현재보다 약 20조원이 늘어난 4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국회에는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의 법적 지위를 ‘특례시’로 부여하는 등 ‘사무·조직·인사교류·재정 특례’를 부여하는 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개헌 논의에도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선이후난[先易後難], 쉬운 것을 먼저 하고 어려운 것을 나중에 한다는 말처럼 지방분권 강화를 위해서 정부가 규정이나 규칙 개정 등 비교적 손쉽게 하는 것부터 국회가 입법으로 해야 하는 것, 국민 투표 등 개헌으로 하는 것 등 그 정도와 절차에 따라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어렵고 복잡하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되며, 지방분권의 시대에 맞는 옷을 입혀야 한다.

지방자치의 확대, 지방분권 강화의 핵심은 시민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국토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데 있기 때문이다.


백혜련 국회의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