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란우산 검정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1948년 만들어진 윤석중 작사 이계석 작곡의 동요 ‘우산’이다. 혹자는 동요가 지어진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둘 때 우산은 해방과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뜻한다고 하지만 기자에게 ‘우산’은 어린 시절 비오는 날 친구들과 등하굣길에 즐겨 부르던 정감 있는 동요로 기억된다. 성인이 된 지금도 비오는 날이면 흥얼거리게 되는 이 노래의 풍경을 요즘 아이들은 추억할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

비오는 날 등하굣길 교문 앞은 아이들을 내리고 태우는 학부모들의 차로 북새통을 이룬다. 집집마다 한둘 밖에 없는 귀한 자식들이다 보니 혹여나 비를 맞을까 흉흉한 사건에 휘말리진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호한다. 부모에게 아이는 소중하다. 너무 소중해 비를 맞는 것도 일체의 먼지에 노출되는 것도 불량음식을 먹는 것도 허용할 수 없다. 그렇게 유리 가벽 속에 갇힌 요즘 아이들은 지나친 보호 속에 학교도 친구도 놀이도 어른들 기준에서 어른들 시선으로 다니고 사귀고 한다.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친구들과 우산을 들고 맘껏 장난을 치며 등하굣길을 걸어 다니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금지옥엽 내 자식을 보호하려다 보니 남의 자식이 문제라고 너무 쉽게들 이야기 한다. 아이들의 호기심 놀이가-어른들의 시선과 판단에서 해서는 안 될 놀이라 할지라도- 심각한 범죄 취급을 받는 것은 안타깝다. 어른이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린 아이들이 호기심에 한 놀이가 각종 사건사고로 이어질 때 어른들에 의해 어리디 어린 아이들은 범죄자, 가해자 등의 무서운 말로 혼쭐이 난다.

추석이었던 지난 4일 의왕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고급 수입차량이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6~9세 어린 아이 3명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꼭대기 층인 21층으로 올라가 어른 주먹만한 감자 3~4개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이로 인해 주차돼있던 차량 지붕이 움푹 패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는 없어 천만다행이었다.

6~9세 어린 아이들은 경찰조사에서 감자가 바닥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지 궁금해서 던졌다고 진술했다. 고작 6~9세 어린 아이들의 이 같은 행동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어른들은 쉽게 ‘감자 테러’니 ‘가해자’니 ‘범인’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써가며 혀를 찼다. 무엇이 잘못이고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를 나이에 어른들에 의해 그렇게 돼버렸다. 부모가 차주를 만나 진심으로 사과하고 수리비를 변상하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어떤 위험이 있는지 왜 잘못된 행동인지 알려주고 교육하면 될 일 아닌가 싶다. 내 자식이 아닌 남의 자식이라고 남의 일이라고 어린 아이들에게 범인이니 가해자니 하는 용어를 너무 쉽게 남발하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렇다. 비슷한 또래 부모들에게서 들리는 말들이 그렇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랑 놀다가 “나 너랑 안놀아?”라는 말을 했을 경우 이것이 어른인 부모의 입을 통해 협박이 된다는 것이다. 같이 장난치며 놀았는데 한 아이의 입을 통해 나온 놀이가 다른 아이 부모 입장에서 납득이 안가는 상황이 될 때 아이들의 놀이가 어른들에 의해 협박이 되고 범죄가 되고 가해가 되기도 한다.

잘못은 잘못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어린 아이의 동심으로 먼저 그 어린 아이들의 놀이를 이해하고 무엇이 잘못이고 왜 잘못인지, 어떤 놀이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지도하고 교육하면 될 일이다. 어른들의 호들갑으로 어리디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 ‘넌 나쁜 아이야’라는 각인될 상처를 입히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모르기 때문에 죄의식이 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반성할 줄 모른다고 몰아붙이는 어른들의 일방적인 말과 행동은 너무 가혹하다. 보다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어른인 학부모들의 여러 노력들이 비 오는 날 찢어진 우산을 쓰고도 하하호호 웃으며 즐겁게 학교를 오갈 수 있는 어린 아이들의 동심을 귀히 여기는 데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박현정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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