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친구인 여중생을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이영학 사건’과 관련해 골든타임을 놓친 경찰의 초동수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사건 개요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싫을 정도로 천인공노할 일이다.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이 씨는 범행 경위나 방법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다. 사건의 진상은 철저히 규명되겠지만 사건 발생 초기 경찰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충분히 피해 학생을 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경찰의 무능한 대처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경찰 상호 간에 엇박자 대처도 기가 막힌다. 피해 학생의 부모가 가출신고를 했을 때 서울청 112종합상황실은 ‘코드1’ 지령을 내렸다. 이는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 임박’을 의미한다. 하지만 경찰은 피해학생을 ‘단순 가출’로 판단하고 신속하게 행적을 파악하지 않은 채 천금 같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때 경찰이 실종수사의 매뉴얼대로 마지막 목격지였던 이 씨의 집을 수색했다면 피해 학생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피해 학생의 부모가 딸이 마지막으로 만난 친구의 이름을 알려줬으나 경찰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정황도 드러났다.

이에 경찰 측은 지구대 안이 소란스러워 듣지 못했다고 둘러댔다가 지구대 CCTV 화면이 공개되면서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밝혀져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다. 게다가 같은 경찰서 형사과에서 이씨의 부인 최모씨 투신자살 사건을 내사 중이었지만 실종수사팀은 이를 알지 못했다. 같은 경찰서 내에서조차 동일인이 연계된 사건임을 서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사흘 후에야 합동수사가 시작됐지만 이미 피해 학생은 살해된 뒤였다.

수사에 문외한인 일반인이 보더라도 피해자가 가장 마지막에 만난 사람과 그 집에 대한 수사부터 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더구나 코드1으로 분류된 긴박한 사건에 대해 실종수사의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서울지방경찰청을 상대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장은 여야 의원들의 경찰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수사의 기본만 지켰더라도 피해 학생을 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감장에는 탄식과 질타가 쏟아졌다. 서울경찰청장은 초동수사 부실과 인수인계 미흡 등에 대해 사과하고 정확한 진상조사로 책임을 가리겠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와 꽃다운 한 생명을 지키지 못한 책임은 과연 누가, 무엇으로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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