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수염이 멋들어진 유명한 성악가의 목소리로 친근함을 더하게 되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다. 날마다 멋짐이 폭발하는 시월이다. ‘오매, 단풍 들것네’로 들이닥친 가을과 다가올 겨울이 내심 반갑지 않은 시인 김영랑의 누이와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이는 감이파리에서 가슴이 물들기도 전에 뒹구는 낙엽이 안타까운 시월의 멋진 날이다. 붉다 못해 터질 듯 익어버린 시간이 안타까워 자꾸만 생각이 깊어지는 시월은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봄과 여름이 남긴 흔적으로 쓸쓸함에 공허함이 백배쯤 더해진 슬픔으로 너덜너덜해진 날이다.
시월은 끝을 말하는 열매가 아니고 열매 속에 숨겨진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그 쓸쓸함에 대하여 매몰되는 정서적 보편성에 강요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지난 계절 내내 불붙었던 열정에 찬바람 하나 분다고 해서 불꽃이 꺼질 리는 없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움찔하게 되는 소심함을 확인하게 되는 지금이 바로 시월이다.
뒹구는 낙엽에 기대어 굳이 자신을 꺼내어 덮어보고 만져보고 구겨보고 태워보고 향까지 맡았던 수많은 작가들도 애태웠던 시월 덕분에 ‘구르몽’같은 남자의 넋두리처럼 들리는 시가 절절하게 와 닿는 시월이기에 편지 하나쯤 써야하는 뜻 모를 이유를 찾게 되기도 한다. 곁에 있는 사람이 이해 못해주는 것에 아파하고 허탈해지는 것도 시월이며 그것마저 나만의 향이라고 위안을 삼아버리는 단어들을 양산하며 지금 이 글처럼 횡설수설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지는 것도 시월이다.
풍광이 눈에 익거든 작은 가방을 꾸려보자. 하루쯤 완벽한 불꽃 속으로 뛰어들어 온몸을 던져 시월이라는 바다에 빠져보자. 눈물 같은 바다에 허우적거리든 호흡을 즐기며 유연함으로 즐기든 내 자신을 그렇게 노랗고 빨갛게 물들여보자. 시린 가슴을 열고 뜨거운 불꽃이 아름다운 이유를 떠들어보자. 책 한권을 구명정삼아 가을바다로 떠나보는 시월에 따뜻한 차 한 잔이면 그리운 사람에게 보낼 수 있는 미소가 행복한 시월이다.
한계령에서 바라보이는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눈물처럼 회한의 조각들이 점점이 떠 있는 시월의 하루가 변명처럼 아름다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 오늘이다. 펼쳐진 노트에 글자 하나 써지지 않는 오늘은 시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