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 후 녹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어요.”

지난해 수원의 A아파트 B단지에 전세로 입주한 김모(여·31)씨의 토로다.

신혼부부에 아이까지 출산한 김씨는 첫 보금자리가 녹물이 나오는 아파트라는 점보다 이로 인해 아이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김씨는 “녹물로 인해 아이가 아토피 등 이상이 생길까봐 걱정”이라며 “입주 전 집주인의 말도 없었고, 이런 게 세입자들의 설움인가 싶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씨는 결국 자비를 들여 녹물 제거용 연수기를 임대했다.

공동주택의 경우 거래 시 녹물·배수불량·배관누수 등 문제에 대한 하자담보책임이 있어 매매 전 하자를 고지하거나 별도의 약정을 포함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세입자들에게는 이같은 내용이 입주 전 전달되지 않아 부담을 모두 떠안는 실정이다.

이같은 실정은 매매 입주자들도 마찬가지다.

19일 오전 10시 같은 아파트 C단지에서 만난 이모(여·61)씨는 녹물로 인한 피해가 입주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고 호소했다.

지난 4월 안양에서 A아파트로 이사를 온 이씨는 계약 당시 녹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

이씨는 “아파트 계약 당시 녹물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집을 알아보자니 시간도, 비용도 부족해 불편함을 참으며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준공된 지 30년이 넘은 A아파트는 상수도관 노후로 인해 물을 사용할 때마다 일정량의 녹물을 먼저 빼낸 뒤에야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다.

녹물필터 등 여과장치를 사용해 곧바로 맑은 물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비용이 만만찮다.

개당 2만~5만 원 정도 가격의 필터를 주방·화장실·세탁실 등에 별도로 설치해야 하는 것은 물론, 2~3개월 주기로 필터를 꾸준히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붉은 녹물은 대부분 물을 이용하지 않는 밤에 쌓인 뒤 다음날 아침 처음 물을 틀 때 나온다”며 “녹물을 제거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물을 틀어놓는 것이 일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웃들이 사용하고 있는 녹물필터도 생각해 봤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워 사용하고 있지 않다. 정수기만 따로 구비해 사용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계약 파기 등을 통해 다른 아파트로 옮기지 않는 이유는 집을 찾는데 낭비되는 비용과 시간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한편,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에서 녹물이 나올 정도의 노후된 상수도관을 사용중인 가구는 총 90만 가구며 이 가운데 20만 가구에 대해서만 상수도관 교체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채태병기자/ctb@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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