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연휴는 유례없이 길었다. 필자의 온가족은 성묘를 가기 위해서 관광버스를 한 대 대절하여 함께 고향에 있는 선산으로 향했다. 연휴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차량이 분산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교통정체가 심한 구간이 많았다. 새벽4시경 출발하여 성묘 후 저녁 집에 9시경에 도착했으니 장장 17시간이 걸리는 긴 여행이 되었다.

성묘 후 동네 야산을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묘소와 묘지가 눈에 띈다. 특히 소위 명당을 찾아 물색해서인지 햇볕이 잘 들고 안락해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어김없이 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위와 같은 현상은 비단 그 동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귀경하는 동안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마을마다 산지마다 묘지가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스쳐갔다. 가히 묘지 강산이라고 할 만하다. 최근에는 장례차 통행세까지 사회문제로 대두대고 있다.

종래에는 농경사회에서 같은 동네 인근에 일가친척들이 모여 살고 전통적으로 조상들의 묘소를 잘 관리하고 제사를 잘 모시는 것이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사회관습 때문에 이와 같은 분묘 제도가 정착되었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교회로서 12세경에 지어진 노르웨이 롬 마을의 스타브(stave)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소박하고 검소한 루터교 정신을 이어받아 작고 아담하게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교회 앞마당에는 공동묘지가 있는데 묘지에는 빽빽하게 묘비가 늘어져 있다. 그러나 봉분은 없기 때문에 많은 면적을 차지할 필요도 없고, 관리상에도 별 어려움이 없으며 수시로 방문하기도 쉽게 되어있다.

중국의 장묘 문화는 전체적으로 화장이 보편화 되었다. 한해 사망자가 600만 명인데 묘지가 산사람의 땅을 차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1956년에 법을 제정하여 매장에서 화장으로 유도하여 지금은 대부분 화장된다고 한다. 장례는 집과 빈의관에서 치르는데, 빈의관은 장례의식도 하고, 화장, 납골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그 비용이 우리나라보다 저렴하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3시간 안에 화장하는 것이 관습이며 화장 후 가루를 강물에 흘려보내고 가는데 갠지즈강에서 화장하면 죄를 완전히 씻고 갈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은 옛날에는 매장이었으나 메이지시대 때 화장으로 점점 장례문화가 바뀌고 공동묘지가 만들어졌으며 그 후 묘지매장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공동묘원이 탄생하여 현재 유지하고 있다. 우리와 달리 주택가, 도심한복판, 강변 등에 위화감, 거부감 없이 가족 납골 묘지를 조성함으로써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보다 편하게 고인을 참배·추도 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독일 역시 가족제도가 그 기능이 약화되면서 노인부양의문제와 함께 묘지의 관리가 가정의 일에서 국가의 과제로 변화되고 있고, 묘지가 국토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면서 가족 묘지를 더 이상 허가 하지 않고 있으며 묘지를 일정 기간 동안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한편, 묘지가 도시의 휴식 공간이자 역사적 유적지로 단장되어지는 추세로 변화 되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화장보다는 매장을 하는 관습이 있다. 묘지는 교회와 연계되어 입지하고 있으며 봉분 없이 평장의 형식을 취하고 1기당 표지 면적은 한 평 정도로 작다. 미국LA 로즈힐은 결혼식과 장례식을 함께 하는 곳으로 묘지와 시설이 마치 예술품과 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어 관광명소로 이용되고 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매장문화이지만 1평 미만의 규모와 다층구조 묘, 시한부 매장제도, 공동묘지의 공원화를 제도화하여 삶과 죽음, 자연이 공존하는 장묘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전국의 묘지는 약2천만 기로 추산되고, 매년 여의도 면적 1.5배의 땅이 묘지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국민 1인당 주거 공간이 4.3 평인데 묘지는 15평이어서 죽은 자의 공간이 산자의 공간보다 3~4배 넓다. 이에 따라 산림훼손, 환경훼손, 경작지 잠식, 지구 온난화 촉진, 물 부족 현상 등 폐해가 크다.

현재, 우리는 묘지 설치·참배·관리상 비용과다 지출, 허례허식, 생태계 파괴와 자연경관 훼손, 국토 이용의 비효율성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매장보다 화장한 뒤 납골 자연장의 형식으로도 일정기간 보전하여 조상을 마음속에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 할 수 있다는 의견도 경청할만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도 최근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건전한 장묘문화 정착을 위하여는 법 이전에 국민들의 의식개선 노력이 급선무이다. 이번 추석성묘 다녀오는 길에 정체된 차창 너머를 바라보면서 조상에 대한 숭배정신을 통하여 혈족간의 우애를 다지는 빛나는 전통을 계속 살려 나가되 장묘문화에서 불합리한 점은 개선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간절하게 가져본다.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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