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이 많았던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 건설재개 의견으로 수렴되었다. 처음에는 여론이 박빙이었지만, 건설 반대와 재개 측의 주장을 듣고 나서 상당한 반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첫째는 원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정책에 대한 정보들이 충분히 국민들에게 제공되지 않고 있고 이로 인해 올바른 사회여론 형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한 편도 의미 있는 자료가 될 수는 있겠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원자력 발전의 현황과 산업적 가능성, 위험성, 위험의 사전 예방 또는 최소화의 가능성, 다른 에너지로의 전환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와 이에 따르는 사회적 부담 등에 대해 진솔한 정보가 제공되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정보가 제공된 다음 국민 여론조사와 정책결정이 뒤따랐어야 한다. 정부는 물론 원자력계 모두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둘째는 민주주의 방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이다. 근대 민주주의는 국민 주권주의에 기초하되, 국민 주권주의의 실현방안으로는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와 국민을 대신하여 대표자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간접 민주주의로 구분된다. 그런데 국회의원과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다. 무능하고 생산성 없는 국회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는 조직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 같은 절충적 직접 민주주의 또는 숙의 민주주의로 불리는 방식이 새로운 대안으로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들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을 오히려 회수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청와대는 숙의 민주주의 방식을 향후 개정될 헌법에 추가하려할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면서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로 정부구조를 전환하려던 흐름이 오히려 정반대로 무능한 국회에 대한 견제를 위한 숙의 민주주의 방식이 도입될 분위기가 성숙된 것이다.

여기에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획기적으로 이양한다는 대통령의 공약이 실천된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방식은 물론 권력의 구도가 여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형식으로 발전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정부구조 및 지방자치에 대한 학문적, 전문가적 토론과정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 신규 원전 발전의 포기라는 에너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에서 형성되고 있다. 기폭장치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에너지 정책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은 우려할 점들이 많다.

에너지를 에너지가 아니라 이념이나 철학으로 접근한다는 점이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에너지를 이념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무나 소똥 등을 태워서 얻던 연료를 석탄으로 전환하면서 현대 사회의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고, 석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로의 전환으로 인해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그나마 건강한 폐를 유지하게 된 것이며, 부존 화석연료가 없고 경제의 식량인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정책적으로 추진했던 것이 원자력 발전 정책이었다.

자본주의와 산업주의를 반대하는 철학으로 바라보면 화석연료나 원자력은 유해하고 위험한 악이지만, 가진 것 없는 우리나라가 그나마 이만큼 살게 된 바탕에 이들 연료임을 인정한다면 고마웠다고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먼저 해야 한다. 즉, 악이 아니라 선이다. 이들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고, 직장에서 받은 월급으로 자식들이 공부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왕에 에너지 문제가 사회적으로 쟁점이 된 이상, 그냥 덮기 보다는 큰 틀에서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 전제로 우리나라는 석탄과 동해 가스전 일부를 제외하고 화석연료가 매장되어 있지 않으며, 좁은 영토, 도시화, 식량 안보 및 수자원 안보 등에 따른 제한으로 인해 신재생 또한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50년 이상의 장기 에너지 정책 방향을 수립해야 한다.

여기에 국제유가의 변동에 취약한 우리나라의 경제구조, 천연가스 수급의 가능성 또한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절차적으로는 전문가들의 솔직하고 공개된 토론으로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들의 해결방안을 마련한 후, 국민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맞다. 에너지 공급의 주체가 국가냐, 시장이냐에 대한 민감한 쟁점에 대한 국민들의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류권홍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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