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근로시간을 단축 시키려 의지가 확고하자 산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주당 근로시간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정부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그러나 여의치 않으면 정부가 독자 조치로 근로시간 단축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법정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행정 해석을 바로잡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산업계는 여러 가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우선은 돈 문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시간 주 ‘52시간 단축’ 이후 현재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연간 12조3천억원에 달한다. 더 들어가 보면 휴일근로수당 중복가산(통산임금의 100%) 등이 적용되면 기존 근로자에게 1천754억원이 더 지급된다. 더구나 근로시간 단축으로 26만6천명의 인력부족현상이 나타나고, 이를 추가 비용으로 충당하면 현금이나 현물급여 등 직접노동 비용으로 연간 9조4천억원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들에 대한 교육훈련비, 직원채용비, 법정.법정외 복리비 등 간접 노동비용 2조7천억원도 추가로 소요된다. 특히 근로시간단축에 따른 추가비용 가운데 70%인 8조6천억원은 근로자 300인 미만 중소사업장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자. 국토가 남북으로 갈라진데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인 상태다. 더구나 요즘에는 북핵 때문에 해외로 수출하는 기업들에게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빈약하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부지런히 산업현장에서 개미처럼 열심히 일에 몰두해 온 국민들의 성실성 때문이었다. 가난을 극복해야 겠다는 일념으로 외국인들 보다 한발 더 뛰었다. 따라서 그것을 단순하게 OECD국가 근로시간과 비교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근로시간을 68시간서 52시간으로 단축했다고 가정을 해보자. 근로자들의 실질적 수입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러면 가처분소득도 감소한다. 이는 가계의 소비가 줄어들어 경제도 위축되게 마련이며, 가처분소득을 늘려 경제에 활력을 주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과도 상충된다. 또한 해외기업들과 입찰경쟁을 하는 업체들의 경우 주중에 업무를 다 마치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 꼭 기한내에 마쳐야 하는 프로젝트일 경우 자발적으로 주말이나 일요일에 나오는 직원들도 적지 않다. 경쟁기업들은 입찰을 따기 위해 야근에 특근까지 하며 피튀기는 노력을 하는데 근로시간 52시간에 막혀 그냥 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산업계나 대.중소기업들의 반감을 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기업 CEO들의 반감을 사게 되면 신규 투자나 신규 인력채용을 덜 할 것이다. 현재는 대기업들이 혹시라도 꼬투리라도 잡히지 않을까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진보적 시민단체가 문재인 정부의 대표 경제정책인 일자리 확충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가 최근 전국 1천10명을 대상으로 한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다. 구체적으로 정부 일자리정책이 신규채용 증가 등 일자리 수를 늘리는 데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53.5%로 “그렇다”(40.4%)보다 높았다. 이어 정부 일자리정책이 고용안정과 차별해소 등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데 실효성이 있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는 응답(52%)이 “그렇다”(42.2%)보다 높았다. 일자리의 양과 질 측면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더 많은 셈이다. 정부 일자리정책에 대한 평가는 성별·연령·직업군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청년세대인 20·30대 남성들은 일자리 수를 늘리는 정책에 대해 “실효성 없다”는 응답이 각각 56.9%, 59.7%로 전체 평균(53.5%)보다 높았다. 직업군별로는 자영업·가사·무직 등 직업이 없거나 불안정한 계층에서 부정적 평가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았고, 취업계층인 블루칼라·화이트칼라는 다른 계층보다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은 OECD 2위인 장시간 노동 사회다. 노동자 삶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국민은 없다. 문제는 경제 주체인 기업들이 감당 할 수 있는냐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으로 기업들에게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다. 여기에 엎친데덮친격으로 노동시간 단축 부담까지 주려고 한다. 시기상조다.

표명구 경제부/고양·김포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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