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직후 "죽을죄 지었다"던 최순실, 수사·재판 내내 "억울"
"나 때문에 대통령 험한 꼴"…"유라, 나쁜 아이 아니다" 울먹
검찰엔 '불만'·재판장엔 '호소'·박근혜 앞 '자책' 여러 모습

 

▲ 최순실씨가 지난해 10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모자와 안경을 쓰고 도착했다(맨 오른쪽). 최 씨는 시위하는 시민과 기자단을 거치는 중에 신발 한 짝이 벗겨졌다(가운데). 이후 검찰 청사 안에 들어선 최 씨에게선 안경과 모자도 보이지 않았다 .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이자 '국정농단'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최순실씨는 지난 1년간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수많은 말을 남겼다.

 대통령 뒤에 숨어 나라를 좌지우지했다는 범죄 혐의를 받는 최씨의 언행은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고, 수사·재판 기간 내내 여론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최씨는 귀국 다음 날인 지난해 10월 31일 서초동 검찰청사에 출석했을 때만 해도 잔뜩 몸을 낮춘 모습이었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타난 그는 포토라인 앞에서 "국민 여러분 용서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며 울먹였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도망치듯 취재진을 벗어나느라 '프라다' 신발 한 짝이 벗겨질 정도였다.

 

 체포와 구속, 기소 과정을 거쳐 최씨는 지난해 12월 19일 첫 공판준비기일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한 달 여 만에 공개적으로 말할 기회를 얻은 그는 재판장이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을 묻자 "독일에서 왔을 땐 어떤 죄든 달게 받겠다고 했는데, 이제 정확한 걸 밝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재판을 통해 혐의를 벗겠다는 얘기였다.

 이후 최씨의 입에서는 수시로 "억울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1월 5일 첫 재판에서 재판장이 "혐의를 전부 부인하느냐"고 묻자 "네"라며"억울한 부분이 많다"고 호소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소환에 처음 응한 1월 25일엔 법무부 호송차에서 내려 이동하는 와중에 작심한 듯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라고 소리쳐 대기하던 취재진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다.

 

 당시 그는 "박 대통령과 경제공동체임을 밝히라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 "너무 억울해요. 우리 애들, 어린 손자까지 이렇게 하는 것은…"이라며 특검 수사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현장에서 지켜보던 한 60대 여성 미화원은 최씨를 향해 수차례 "염병하네!"라고일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본인 재판에선 그 어떤 국정농단 피고인보다도 적극적이었다.

 최씨는 미르·K재단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나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들만 줄줄이 쏟아내자 재판장에게 "증인에게 물어볼 기회를 좀 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이후 증인들의 증언을 "황당무계하다"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의혹 폭로자인 고영태씨 등을 겨냥해선 "뒤에서 다 실세 노릇을 했고 저는 허세 노릇을 했다"는 말도 했다.

 법정에서 만난 조카 장시호씨에게도 "사실이 아닌 걸 폭로성으로 얘기하고 있다"고 따졌다. 장씨는 "손바닥으로 그만 하늘을 가리라"고 이모에게 언성을 높였다.

최씨는 딸의 이화여대 지도 교수였던 함모씨게도 "교수님이 거짓말, 허위진술을 많이 하신다. 교수님 같은 분은 처음 본다"고 쏘아붙였다.

 

 검찰을 향해서는 더 날 선 반응을 보였다.

 그는 "검찰 때문에 제가 부도덕한 사람이 됐다"고 화살을 돌렸고, 삼성의 승마 지원에 뇌물수수를 적용한 데에는 "특검팀이 억지를 쓰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자꾸 엮으시려고 그러면 안 된다", "증거가 있으면 얘기를 해봐라"라며 적극적으로 검찰을 공박하는 모습도 보였다.

 검찰의 질문 공세에는 "똑같은 질문을 똑같이 물어보면 내가 정신병이 들겠다","검찰이 너무 많은 의혹을 제기해서 내가 괴물이 됐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특검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딸을 증인으로 몰래 세웠을 땐 "제2의장시호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딸과 제 목줄을 잡고 흔든다"고 성토했다. "딸을 새벽에 남자 조사관이 데려간 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도 비판했다.

 재판장들에게는 주로 어려움을 호소하며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재판을 줄여달라", "접견 금지를 풀어달라", 책을 읽게 해 달라", "구치소를 옮겨달라"는 등 요구 내용은 다양했다.

 내달로 구속 만기를 앞둔 최근엔 북한에 장기간 억류됐다가 미국에 송환된 직후사망한 오토 웜비어까지 거론하며 석방을 요구했다. "정신 고문이나 고문이 있었다면 저도 웜비어와 같은 사망 상태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다만 자신의 40년 지기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내내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열린 재판에서 "제가 안고 갈 짐은 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 파면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했다는 후문이다.

 그 뒤에도 최씨는 기회가 될 때마다 "저 때문에 대통령이 험한 꼴을 당했다", "박 전 대통령을 재판정에 나오게 한 제가 죄인"이라며 자책했다.

 박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거나 "사심 없는 분이니 모욕하지 말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딸 정유라에 대해서도 눈물겨운 모정을 나타냈다.

 그는 5월 말 딸의 강제 송환 소식을 들은 후 재판에서 "유연이(유라)는 삼성 말한 번 잘못 빌려 탔다가 완전히 병신이 됐다"고 울먹였다.

 정씨가 국내에 들어온 이후엔 "국민께서 유라를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 그렇게 나쁜 아이는 아니다"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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