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문신이자 수원백씨 9세조인 문익공 백천장 선생 묘는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기안동 산7(기안길 65)에 있다. 당시의 묘지 양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경기도 내 몇 안 되는 고려시대 묘다. 사도세자와 정조의 융건릉에서 직선거리로 2km에 위치한다. 본래 왕릉이 조성되면 반경 10리 이내의 산소는 모두 이장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정조는 백천장의 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주변에 깃발을 나열하여 꽂고 그 안쪽은 옮기는 것을 제외시켜 주었다. 기안동은 깃발 안쪽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백천장은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와 정당문학을 역임하였다. 원나라에 가서 유학하고 금자광록대부 이부상서를 거쳐 우승상에 올랐다. 당시는 원나라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고려의 학자들이 원에 유학하고 과거 시험을 통해 벼슬에 진출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늘날 같으면 미국으로 유학 가서 그곳에서 고위공무원이 되는 것과 같은 거다. 나이 들어 귀국한 그는 수성백에 봉해졌고 수원에서 거주하다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수성은 수원의 옛 이름이다. 백천장 죽음 소식을 들은 고려 충선왕은 예관을 보내 치제하고 문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묘역은 경기도 기념물 제86로 지정되어 있으나 개방을 하지 않는다. 평소 문이 닫혀 있으므로 수원백씨 종중이나 묘지관리인에게 미리 연락을 해야 한다. 잘 정비된 묘역에 들어서면 먼저 상당히 깊어 보이는 연못이 나타난다. 주변에 큰 골짜기가 없는데도 수량이 풍부한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물이다. 이는 빗물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땅에서 솟아난다는 뜻이다. 묘지 아래 자연적으로 형성된 연못을 풍수에서는 지당수라고 한다. 용맥의 생기를 보호하며 따라온 원진수가 묘 앞에서 합수한 후 지상으로 용출된 것이다. 수량이 풍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용맥의 기세가 크다는 뜻이다. 기세가 강한 용맥에서만 대혈을 맺을 수 있다.

묘 앞에 지당수가 있으면 혈의 생기가 조금도 앞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생기는 물을 만나면 멈추고 가두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에 연못이 있는 집터나 묘터는 매우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땅을 파서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연못은 오히려 흉함을 가져다준다. 땅을 파면 집이나 묘의 생기를 보호하는 수기가 연못으로 빠져나간다. 그때 생기도 같이 새어 나간다. 전원주택을 지을 때 연못을 조성하려는 사람은 이점을 주의해야 한다. 단 땅을 파지 않고 외부에서 물을 끌어들여오는 것은 무관하다.

묘지에 오르면 수원 시내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전망이 확 트여 있다. 얼핏 보면 혈을 감싸주는 청룡백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주산인 고금산에서 양쪽으로 뻗은 아트막한 능선이 이중삼중으로 감싸고 있다. 특히 도로가 된 백호자락이 원을 그리듯 길게 감싸며 보국을 형성하였다. 그러다보니 그 안쪽 땅은 평탄원만하다. 지금은 이곳에 잔디를 심고 조경을 해놓아 참배하러오는 후손들이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멀리 보이는 산들 역시 이곳을 감싸고 있어 마치 외곽성처럼 보인다.

이곳의 태조산은 한남정맥 상에 있는 수리산(489.2m)이다. 수리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내려온 산맥 하나가 구봉산(146m)을 거쳐 중조산으로 칠보산(238.5m)을 세웠다. 그리고 오목천삼거리 능선을 지나 소조산이자 주산인 고금산(86.6m)을 세웠다. 여기서 조금 더 뻗어나가 만든 산이 융건릉이 있는 화산(108m)이다. 묘역 주변은 야트막한 구릉과 들판이다. 풍수 고전에서는 들판 가운데 반듯하게 우뚝 솟은 산이 있으면 그 아래에서 혈을 찾으라고 하였다. 이곳과 융건릉이 그에 알맞은 자리일 것이다.

묘 뒤의 볼록한 부분인 입수도두에서 현무 쪽을 바라보면 입수룡이 보인다. 입수룡은 현무에서 혈까지 이어진 용맥을 말한다. 산모의 태반에서 태아의 배꼽까지 연결된 탯줄에 비유하기도 한다. 혈에 생기를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대게 이곳의 상태를 보고 혈의 대소여부를 판단한다. 입수룡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서 보면 맥이 갈지(之)자 모양으로 굴곡하며 변화한다. 맥이 살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곳의 단점은 특별한 안산이 없다는 점이다. 뒤의 현무는 남편에 앞의 안산은 부인에 비유한다. 부부가 서로 마주보고 있어야 편안한데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풍수무전미’라 하여 완벽한 땅은 없다. 부족한 것은 인공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비보다. 이곳은 비보가 필요한데 오히려 개발로 파괴되고 있어 아쉽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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