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내리는 찬 이슬이 마음까지 시리게 하는 계절이다.

그 어느 때보다 밝은 희망을 꿈꾸던 사람들이 기약 없는 내일을 포기하고 하루살이 삶으로 돌아서 자포자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해야 할 만큼 어려운 취업난에 실망한 청년 실업자들이 거리마다 한숨짓는 사이로 이성을 상실한 각종 범죄 집단들마저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어 불안하다.

인간이 이성으로 점철된 덩어리라 하지만 지금 거리에 돌연변이 되어 원초적 이성을 상실한 악사들이 마구 날 뛰고 있는 와중에 삶을 포기하는 자살자들의 숫자도 줄어 들 줄 모르고 있다.

태초부터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면서 희노애락을 연주하는 악사다.

문제는 한쪽에서 황금만능 쾌락주의에 빠져 이 시대 원초적 이성 악사 역할을 해야 할 지성인들이 휘청거리고 있는 사이, 또 다른 회색빌딩 골목 뒤에서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흐느끼는 소리가 우리 삶의 도랑을 깊이 적시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슬퍼해야 한다.

어디 이뿐인가. 의사가 아내를 독극물로 살해하여 법의 심판을 받았고, 정치인들은 권모술수에 ‘조삼모개’로 ‘보이콧’ 편향 방정식의 표적 당략에 맞춰 통합, 우파 배신 발언에 이어, 낙마한 솔로몬 왕에 대한 옹호 질주가 또 다른 정쟁의 불씨를 낳았다.

오늘에 약자들이 자괴감에 빠져 인성의 황폐를 낳고 있는 사이, ‘가습’ 사태’의 바톤을 이어 받은 살충제 달걀, ‘소세지 불안’과 ‘릴리안 분노’가 거리마다 술렁이며 파도치는 날에도 방송가에서는 100세 건강유지에 목청을 높이고 있었는가 하면, 아이러니 하게도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쉐프들이 양극화를 가속화 시키는 더 잘 먹고 살찌우는 방법을 보여 주면서 비만 공화국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휘청거리고 있었다.

양자 총체적 과오에 대한 자화상으로 정치인은 물론, 법조인, 학계, 교육계, 군 집단, 민중의 지팡이 등, 심지어 ‘이성 악사’의 상징이라 일컫는 예술인들까지 인성을 상실해 도처에서 사회의 지킴이가 되어 주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잊을 만 하면 패륜이 난무하는 가정파괴범이 도처에서 날뛰고, 10대 청소년이 인간의 시체를 갖고 싶어 자신보다 어린 아이를 유인 살해 시신을 훼손하는 사건이 있었는가 하면, 초등교사가 제자를 성폭행하는 의제강간 사건에 이어 어금니 아빠 사건도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 같은 ‘황금만능’과 쾌락의 거미줄에 정체성이 포로 되어 인성을 상실한 이성들이 골다골증에 걸려 있는 지금 저, 거리의 흐느적거리는 삶의 곱사등을 그 누가 곧게 펴 줄 것인가.

그 언제쯤 이 땅에 오염되지 않은 지성인들이 나타나 건강한 민주 촛불 캔버스에 위대한 파란 삶의 수채화를 그려 줄 것인가.

황달에 걸려 휘청거리는 저, 들판 숲속을 일으켜 줄 건강한 ‘홍익’의 DNA를 지닌 강철 같은 지휘자는 그 어디쯤 숨어 있을까.

원초적으로 ‘이성의 악사’는 인성’이며, 도덕의 스승인 윤리의 아버지는 인성의 후예였다.

저, 불안에 휘청거리는 회색빌딩 숲속 뒤 골목에 그 언제쯤 밝은 햇살이 비쳐질 것인가.

오늘의 어두운 사회에 등불이 되어 줄 건강한 악사 지휘자의 모습이 진정 그리운 이유다.

때론, 정의롭고 희망 있는 사회를 보장해 주기 위한 방패로 각성의 무기를 들고 나온 지휘자가 있었어도, 그 광야의 ‘세례요한’ 역시 현실을 깊이 깨닫지 못해 이 사회 참다운 이성의 이정표가 되어 주지 못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혼돈의 거리에 원초적 이성을 분별할 줄 아는 ‘서릿발’ 같은 악사들이 많이 나타나 더 이상 홍익의 이성이 상실되지 않도록 붙들어 주어야 할 것이며, 절망에 신음하며 불어대는 하루살이 악사들의 파열음을 깊이 새겨들어야 할 때다.

오늘의 사회가 굳건히 흔들리지 않도록 겨레의 지휘봉을 손에 든 거리의 간이역장을 기다리고 있는 이유다.

내일은 진정, 우리에게 희망의 등불을 밝히며 곳곳에 이 나라 ‘무궁화’ 노래를 평화롭게 지휘 해주는 그 악사를 만나보고 싶다.

김종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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