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에 들어간 지 48일되던 1637년 1월 30일, 조선의 국왕 인조는 그의 장자 소현세자와 남색 옷을 입고 서문을 통해 산성 밖으로 나갔다. 남한산성 안팎에서 통곡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는 한강 동편의 나루터인 삼전도(三田渡)에 9층으로 단을 만들어 그 위에 앉아 있었다.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의 막과 양산에 병기와 깃발이 단을 에워싸고 있었고, 정병 수만 명이 단을 중심으로 네모지게 진을 치고 있었다. 홍타이지는 인조의 항복을 한양 도성의 전 백성들이 보게 하고자 하였다. 조선의 국왕이 오랑캐라고 불리던 만주족의 황제에게 항복하는 모습을 보이게 함으로써 조선 국왕의 무능과 조선의 성리학으로 무장된 친명사대주의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알게 해주고자 한 것이다.

아버지의 국가였던 조선이 어떻게 아들 국가 여진에게 항복을 하고 그 아들을 아버지로 삼고, 아버지였던 그들이 아들이 되었단 말인가? 이후 조선은 여진족을 오랑캐라고 부르고, 청나라의 연호인 숭덕(崇德) 연호를 사용하고 청나라에 689여회의 사절단을 보내 사대의 예를 갖추었다.

그렇다면 왜 병자년에 청나라와 전쟁을 하게 된 것일까?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이것을 단지 여진족의 영토 확장때문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인조의 무능으로만 정리해야 하는 것일까? 이는 바로 조선의 사대주의와 실용주의의 대결이고, 수구와 개혁의 대결에서 나온 결과이다.

임진왜란의 실상을 눈으로 몸으로 목격한 광해 임금은 조선의 새로운 국왕이 되자 중립외교를 추진했다. 새롭게 성장하는 여진족의 기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겉으로는 거대한 국가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부 혼란으로 망하기 직전의 상황인 명나라의 현실을 정확히 본 것이다. 그리고 광해는 명나라가 조선을 위해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참전한 것이 아니고, 명나라 자신을 위해서 조선에 군대를 보낸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명나라의 뜻은 오로지 일본군이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의 영토인 요동땅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명연합군이 한양 도성을 탈환하자 더 이상 일본군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고 일본과 휴전 협정을 맺어 버린 것이다. 조선의 군대가 퇴각하는 일본군을 공격하면 일본군과 휴전을 맺은 명나라 황제의 뜻을 어긴 것이라며 조선의 장수를 참해버린 명나라는 사실상 조선의 동맹군이 아니었다. 조선을 도와준다고 하며 오히려 일본군보다 더한 노략질과 여인들에 대한 강간을 일삼은 명나라 군대를 어찌 동맹군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광해는 명나라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신흥 국가 후금(청)과 적대적 관계를 맺지 않으며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조선의 재건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것이 조선의 기득권에게는 문제였다. 성리학으로 무장된 그들은 실용성이 거의 없었다. 그들에게는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그들의 속내는 진짜 명나라를 흠모하고 명나라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명나라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것 뿐이었다.

실제로 친명 사대주의를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한 이들은 그 명분으로 광해 임금을 공격하고 명나라와의 의리를 위해 새로운 국왕을 받들기로 했다. 그가 바로 인조였다. 그리고 인조와 그의 측근 권력자들은 후금과의 실용적인 중립외교를 버리고 오로지 아무런 힘도 없는 명나라와의 관계만을 유지했다. 그들에게 백성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백성들을 생각하는 정치인이었다면 절대로 그런 쿠데타를 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인조와 그 세력들은 다 망해버린 명나라 군대의 조선 주둔을 허용했고, 조선의 식량 1/5을 그들에게 바쳤다, 결국 조선의 조정은 이러한 비실용적 행동을 하다가 끝내 청나라의 침입을 받고 조선 역사상 최고의 치욕을 겪은 것이다.

오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한다.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벌여도 한반도에서 일어날 것이니 미국 국민에게 상관없다는 발언을 한 그가 한국에 온다. 흡사 명나라 황제를 보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은 한미동맹도 중요하지만 그 동맹만을 위해 비실용적 태도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맞아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도 당당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국민들과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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