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하 경기도립국악단장·중앙대 교수

TV나 라디오를 틀면 가요와 팝송은 쉽게 들을 수 있다. 어린이들은 두뇌 발달에 좋다며 서양 음악인 클래식을 많이 듣고 부모와 함께 음악회도 다닌다.

하지만 우리의 것인 국악은 전통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전에는 각 방송사에도 국악 프로그램이 존재했으나 현재는 대부분이 사라진 상태로, 가요와 드라마, 예능으로 채워졌다. 최근에는 음식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과 과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는 방송 등이 인기를 끌고 있으나 우리 민족 정서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국악은 여전히 부재중인 것이다.

국악이 외면을 당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선입견과 변화없는 답습일 것이다. 사람들은 국악은 지루하고 어르신들이 듣는 음악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실제 TV에 나오는 국악을 보면 한복을 차려입고 나온 명인이 길고 지루한 느낌의 곡을 노래하고 연주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체널은 금방 돌아간다. 특히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가요에 익숙해 있어 국악은 더욱 관심 밖에 음악이다. 어려서부터 국악에 대한 교육을 통해 흥미를 느끼게 해야하고,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시대에 뒤쳐지고 결국 잊혀지게 된다.

이에 국악의 이 같은 취약점을 앞장서 보완하고 ‘국악의 세계화’를 위해 발벗고 앞장서는 사람이 있다. 바로 최상화(60) 중앙대교수 겸 경기도립국악단장이다. 국악에 몸을 담은지 벌써 45년째다.국악의 진일보를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다보니 백발이 됐다는 우스겟 소리가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초등학생들에게 국악의 흥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 악기를 개량하고 서양 음악의 본고장으로 꼽히는 독일을 무대로 국악을 연주했다. 오롯이 국악의 삶을 살아온 최 교수를 통해 우리 국악의 현실과 어려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들어본다.

-국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세요.

“고향은 충남 아산입니다. 시골 농촌이다보니 동네에서는 풍장(풍물)을 치는 것을 자주 보게 됐지요. 부모님께서는 시조를 읊으셔서 자연스럽게 국악을 접하게 됐고 생활이 된거죠. 1968년에서 1970년대 초반에는 국악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배우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서울에 있는 국악예고(현 국립전통예술고)와 국악고가 유일했죠. 1971년에 국악예고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국악예고에 입학 후 선택 악기를 가지고 오리엔테이션을 했는데 대금을 보면 옆으로 불잖아요. 그게 너무 멋있더라고요. 저에게도 잘 맞았고 금방 소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박귀희(가야금병창)·김소희(판소리)·박헌봉(판소리)·지영희(피리)·한범수(대금) 등 선생님들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유명하신 선생님들이시고 오로지 국악밖에 모르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국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대학교에 진학을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중앙대에 입학을 했는데 고등학교때 배운 것을 다시 배우게 되더라고요. 이에 작곡으로 전공을 바꾸고 여러 문화를 접하다보니 드디어 눈이 뜨인거죠. 비로소 제가 국악을 하게 된 이유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우리 민족이 혼이 담기고 애환을 함께 한 국악은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음악입니다. 특히 사물놀이는 우리민족은 물론, 세계인의 어깨도 들썩이게 할 정도로 활력 넘치는 음악인 만큼 세계속의 국악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동안 국악 활동은 어떻게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1971년도부터 지금까지 민속악회 시나위의 단원으로 활동중이며 4대 회장(1981~1987년)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개인 단체임에도 60명 정도되는 큰 악회였고 당시 김덕수(사물 타악)·김영제(가야금)·최종실(사물 타악) 등과 함께 저는 대금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타악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공연을 한 것이 지금의 ‘김덕수 사물놀이’의 탄생이 된 것이죠.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국악에 대한 역사가 많이 이뤄졌죠. 이후 저는 1981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해 대금 연주자로 1990년까지 10년 동안 활동하면서 대학교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갖춰야 할 학위가 학식 등을 갖춰 1990년에 전북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임용됐고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에서 초빙교수로 근무했습니다. 2002년에 중앙대로 교수 이직 후 국악교육대학원장, 예술대학장 등을 거쳐 현재까지 약 15년간 중앙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중앙대 학교 기업 ‘아리(Ari)’의 대표로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기업인가요.

“대학에 입학해 어느 정도 흐르다보니 ‘내가 무엇을 해야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 중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국악을 보편적인 음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초·중·고등학교 등에서 교육을 통해 우리 국민들이 판소리를 듣고 우리의 전통악기 1개씩을 다룰 수 있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드디어 내가 할일이 생겼구나’하고 생각했죠. 우선은 학생들이 국악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양악 중심의 교육에 국악교육을 활성화시키기고 국악전공자들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교육부와 중앙대 재단에 학교기업 설립을 직접 신청했습니다. 2013년 교육부의 허가를 받아 중앙대 내에 학교기업 ‘아리’를 설립했습니다. 최초의 학교기업이 됐죠. 현재 우리의 전통악기들을 보면 아이들은 도저히 다룰 수가 없습니다. 악기는 아이들 신체에 비해 크고 가격도 비싸 아이들 교육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니까요. 아리는 어린이 체형에 맞는 국악기를 제작해 보급하고 국악 교제 발간, 국악 공연, 국악 교육연구 등의 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도 국악기 제작 보급이 우선사업 입니다. 어린이들 체형에 잘 맞고 값이 저렴한 국악기를 보급함으로서 어린이들에게는 국악교육의 기회를 주고 그로인해 발생하는 교육시간은 국악전공자들의 일자리가 되는 선순환 구조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교육부에서 인정하는 모범적인 학교기업으로 선정돼 내년부터 2~3억 원씩 3년간 지원 받을 예정입니다. 경기도내 100여 개 초등학교에 국악반(기악 성악 타악) 설치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경기도립국악단장으로 계시면서 성과로 ‘치세지음’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의미와 성과, 계획이 있다면.

“국악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생각한 것은 이렇게 가면 국악은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겠구나, 변화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독주중심에서 교향악단으로 악기 개량을 통한 서양악기와의 협연, 국악의 작곡도 다양화 되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2015년 경기도립국악단장으로 고민하고 연구해 탄생한 것이 ‘치세지음(治世知音)’입니다. 이는 경쟁력과 보편성을 갖추고 서양 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국악의 악보로, 음계와 조성의 변화가 어려운 국악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프로젝트 입니다. 서양 악기의 악보처럼 전통악기의 연주를 위해 악보로 정리한 것이죠. 또 현 시대에 맞는 다양한 음악을 소화하도록 숙련된 연주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악기개량을 목표로 지난해 1월부터 1천 페이지에 달하는 연습교본을 직접 제작해 단원들과 연습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단원들도 기쁨반 두려움반 이었어요. 처음 받아본 전통악기의 악보였으니까요. 계속된 훈련으로 완벽할 정도로 능숙해졌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경기도립국악단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에 헝가리 출신에 독일 마에스트로인 ‘페렌츠 가보’가 도립국악단을 지휘했고 같은해 12월에는 독일과 스웨덴을 무대로 우리의 국악을 알리는 좋은 기회도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악기들도 많이 개량도 이뤄졌습니다. 단원들은 1인 2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능력, 즉 전통악기와 새로운 개량악기 연주능력을 갖춤으로서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민족음악악단’으로부터 일반 음악이 가능한 ‘일반 오케스트라’로 변모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해금과 아쟁에 대한 개량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량을 시도한 이유와 기대가 있으신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악기가 개량되고 있습니다. 피아노가 개량된 것이 키보드인 것 처럼요. 현재의 음악적 욕구를 잘 해결해주는 악기가 현재의 악기고 그렇지 못한 것은 전통악기입니다. 옛 음악을 하는데는 적격이지만 지금의 음악을 하려면 안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에 옛것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개량을 해 재창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국과 북한, 일본은 1950년대 초부터 전통악기를 개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00년~200년 전 것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옛날 악기를 버리고 새것만 받아들이자는 말은 아닙니다. 옛것은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새로운 것도 시도를 해보자는 이야기인 것이죠. 전통악기의 줄은 명주실을 썼고 나무도 오동나무를 쓴 이유가 다 있습니다. 철기 이후에는 철을 썼습니다. 그냥 개량만 하는 하는게 아닙니다. 기존 악기에 대한 사양을 제대로 알고난 다음에 개량이 시작되야 합니다. 현재 국악 오케스트라는 악기개량이 안돼 콘트라베이스와 첼로 같은 저음 서양악기를 빌려와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개량을 통해 이를 보완하려 합니다. 대안으로 해금과 아쟁에 대한 개량에 들어갔습니다. 해금은 내부에 한지를 덧붙여 소리를 중저음으로 낮추고 아쟁은 완전 저음으로 하기 위해 기존 명주실 줄을 쇠로 교체해 쇠로 감는 등의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는 17일 열리는 ‘비타콘서트’에서 첫 선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악 저변 활동을 위한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주세요.

“현재까지 국악이 외면을 받아온 것에 대해 많은 국악인들이 가슴아프게 생각하는데 저도 그 중에 한명입니다. 우리 국악의 옛 것만 고집한다면 국악의 보편성은 더 힘들어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루빨리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교육을 통해 국악의 흥미를 느끼게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악의 큰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국악계에도 전통을 지키자는 사람들도 있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전통음악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모두 같습니다. 때문에 어떤 것이 국악이 살아남고 즐길 수 있는 것인지 함께 고민을 해봐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또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어린이와 노인 등의 정서적인 치료를 위해 음악이 사용되는데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많은 국가로 확산됐는데, 모든 연구와 실행 방식이 서양 음악 중심으로 돼있어 한국인에게는 늘 치료의 한계로 지적돼 왔습니다. 이에 한국의 전통적 치료방법 연구와 실행 연구를 통해 ‘국악치료’를 하고자 만든 한국 최초의 ‘음악치료학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대에는 정신적인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우리 국악으로 치유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취재=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사진=김금보기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