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가진 도구가 망치 하나뿐이라면 당신은 모든 문제를 못으로 보게 될 것이다.”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인생의 활로를 뚫기 위한 다양한 도구를 확보하는 일인데 만약 망치라는 도구 하나에 만족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못을 박는 것밖에 없다. 세상 모든 일이 못일 리는 없는데 말이다.

뭐가 됐든 한 가지만 잘 하면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른바 스페셜리스트가 되라는 건데, 그런 관념은 20세기 중반의 미국사회에서 싹 트기 시작했고 곧이어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덩달아 폭증하는 교육수요를 감당키 힘들어진 대학들이 인문교육을 포기하는 대신 단순 기능인을 양성하는(그들은 ‘전문가 양성’이라 불렀지만) 방향으로 나아갔던 거다.(참고, 월터 카우프만, ‘인문학의 미래’)

그렇게 한 분야의 기능을 익혀 사회에 나와 전문가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 늘면서 소위 전문주의라는 허상이 만들어지고 그 멍청한 전문주의는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이슈에 대해 집단적으로 침묵하거나 외면, 왜곡해서 결국 곪아터지게 하는 우를 범한다. 이런 현상에 대한 지식계의 우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그중 특히 서경식 교수가 들려주는 에드워드 사이드(‘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의 지적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사이드는 오늘날 지식인 본연의 자세를 위협하는 것은 아카데미도 저널리즘도 출판사의 상업주의도 아닌 전문주의(스페셜리즘)라고 단언한다. 현재의 교육제도로는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은 좁은 지(知)의 영역에 갇혀버린다. 전문 분화된 사람, 사이비 지식인들이 정부나 기업 주변에 모여든다. 그 복합체를 형성하는 무수한 세포와 같은 개개의 사람들은 얼핏 가치중립적인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무자비하다고 할 정도로 냉혹하게 권력을 행사하거나 이윤을 추구한다.

사이드는 이런 전문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마추어리즘이란 이익이나 이해, 또는 편협한 전문적 관점에 속박되지 않고 걱정이나 애착이 동기가 돼 활동하는 것이다. 현대의 지식인은 아마추어가 되어야 한다. 아마추어라는 건 사회 속에서 사고하고 걱정하는 인간을 가리킨다.”(참고, 서경식 ‘내 서재 속 고전’)

공부는 자신의 내면에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어떤 학자가 쓴 책을 읽고 그 안에 담긴 지식과 세계관을 공부하면 나의 내면에는 그 학자의 나무가 옮겨 심어진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나무의 종류도 각양각색일 것이고 숲은 면적도 넓을 것이다. 반대로 공부에 게을렀다면 숲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면이 황량할 것이다. 다양한 나무가 자란 숲을 키운 사람은 그 안에 괴테라는 나무도 가지를 뻗고 있고, 도스토예프스키 나무, 플라톤 나무도 자란다.(참고, 사이토 다카시 ‘내가 공부하는 이유’)

‘전문가 바보(fachidiot)’라는 말이 있다. 자기의 전문영역에만 빠져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인권이 유린되는 현실에서 자신의 먹거리에만 관심을 가졌던 지식인, 그저 정권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짜깁기해서 내보냈던 언론인, 용역이니 자문이니 하는 이름으로 관에 빌붙어 학자적 양심을 팔았던 교수, 오너 눈치 보느라 기술자로서의 양심을 지키지 못했던 엔지니어들. 그 모든 전문가 바보들이 만들어낸 현실이 곧 적폐의 축적이며 국정 농단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프게 목격해야만 했던 것이다.

전문가 바보는 한때 좋은 대접을 받았고 호의호식하며 살았다. 그러나 앞으로 그들이 설 땅은 없다. 전문가가 망쳐버린 현실을 바로 잡을 사람은 다양한 분야의 아마추어들이다. 아마추어는 자기 영역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 속에서 세상을 호흡하며 유연하게 사고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는 프로페셔널의 반대말이 아니라 보다 넓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 모두 아마추어가 되자. 그것이 21세가 요구하는 인문학적 인간, 즉 제네럴리스트의 길이다.

망치만 가진 사람은 세상을 못으로 본다. 못만 박아서는 집을 짓지 못한다. 한 종류의 나무만 심어서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 나무와 풀과 새와 동물이 어우러질 때 진정한 생명의 숲을 이룬다.

최준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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