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5월 도원수 김명원은 오늘날 한남대교 북단 어디쯤 있었다는 제천정이라는 정자에 올라 앉아 산하의 풍경을 감상하며 술을 따르게 했다. 척후병조차 쓰지 않아 적군이 오는 것도 모른 채 한시에 운자를 다느라고 애를 쓰던 중 문득 강 저편에 적군이 보였다. 김명원은 무기를 강물 속에 버리라 하더니 도원수 군복을 벗어 버린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한편 수만 명의 ‘삼도 연합군’은 경기도 용인으로 진군했다. 전라감사 이광은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기 위해 출정한다며 북상했다. 그러나 실전 경험은 커녕 제대로 훈련 받은 적도 없는 농민들이 전투 개념이 부족한 우두머리의 지휘를 받으니 수만 대군인들 의미가 없었다. 1600여 왜군에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광교산 자락으로 도망쳤다. ‘싸움 도사’들인 왜군 장수 몇 명의 서슬 퍼런 맹위에 위아래 할 것 없이 겁을 집어먹은 조선군은 군량과 병기를 내버리고 흩어졌다. 당시 그들이 내버린 군수물자가 길을 막아 사람이든 말이든 통행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전하니, 그들이 패배한 이유는 인원이 부족해서도 물자가 부족해서도 아니었던 셈이다. 김명원은 문관이었다. 전란에 대비해 조정은 군사 지식을 갖추고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으로 바꾼다며 전라, 경상, 충청 3도의 감사를 교체했는데, 하삼도의 군사권을 쥔 감사 3인 모두 문관이었다. 그들은 전투에서 이기는 것보다 관념적 명분과 신분 질서를 따지는데 익숙했다. 적에게 쫓겨 가면서도 적을 얕잡아봤다. 정작 더 잘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있다고 해도 등용하기를 꺼려했다. 그들이 벗어나지 못했던 세계관과 가치관 때문이었는지 그들 개개인이 무책임하고 무능했던 탓이었는지는 몰라도, 김명원은 그 후로 다섯 판서를 두루 거친 후 우의정, 좌의정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들은 그렇게 백성의 신뢰를 잃었다.

400여 년 전 일본군에게 어이없이 당했던 치욕의 광교산 아래 창룡대로 변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건물이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승부를 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처럼 총칼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투 중이다. 땀 냄새 피 냄새 대신 고도의 집중과 최고의 지식 싸움이다. 우리의 무장(武將)들이 전세계 내로라 하는 두뇌들과 전투를 하고 있다.

힘센 나라들에는 예외 없이 수준 높은 연구소들이 많고 그곳에는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난 과학기술 전사들이 몰려든다. 1% 더 뛰어난 과학기술자를 위해 100%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만 뛰어나도 최고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진국의 요건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19세기 말 우리는 깨닫지 못했지만 일본은 깨달았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는 온전히 깨닫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오늘날 대한민국과 일본의 과학기술력 격차는 임진왜란 당시의 군사력 차이보다 결코 작지 않다. ‘보고 따라가기’로 이룩한 경제성장이 명백한 한계에 도달했다. 앞으로 국가 경제는 과학기술자의 창의력과 몰입의 정도에 따라 울고 웃을 것이다. 이 나라의 미래가 과학기술자들의 피와 땀에 빚지고 있건만,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에게 과학기술 전사들은 그저 그들이 주무르는 예산에 쩔쩔 매는 ‘을’에 불과할지 모른다.

우리 사회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자는 무엇보다 우수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을 모으고 끌어들이는데 그들의 권한을 사용해야 한다. 수월성 있는 인재가 아니면 아무 것도 나올 수 없다. 선진국일수록 그 사실을 정확히, 그리고 뼈저리게 알고 있다. 어떻게든 자기네 지역에 우수한 과학기술 전사들을 키우고 끌어 모으려 갖은 노력을 다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수한 사람이 이미 우수한 사람들이 있는 곳을 선호한다는 것은 철칙이다. 우수 인재를 끌어들일만한 구심점의 필요조건은 기존 인력의 수준에 대한 명성이고, 기존의 명성에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더해야 혁신 중심의 태동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대표적인 혁신 지역은 모두 명성 높은 대학을 품고 있는 것이다. 답은 정해져 있건만 정치인과 관료의 인식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미국의 정치인 샘 레이번은 이런 말을 했다. “수탕나귀는 헛간을 발로 차서 무너뜨릴 수 있지만 헛간을 지을 땐 목수가 필요하다” 비전문가 권력이 전문가 집단을 올바로 키우고 이끌려면 권한의 크기에 걸맞게 공부해야 하고 이 나라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임진왜란과 크게 다를 바 없다면 우리는 광교산에서 또다시 무릎 꿇게 될 것이다.

정택동 서울대 교수, 융기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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