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의 기사를 접하면서 갑자기 국내에 아직 생존해있는 연쇄살인범의 편지 속 글귀가 떠올랐다. 이는 기자들로부터 범행동기에 대하여 반복적인 질문에 답변을 하던 중 갑자기 떠오르게 된 생각이었다.

일본에서 발생하였던 연쇄살인은 지난달 31일 일본 가나가와현 자마시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하였다. 피의자는 9명의 무고한 시민을 살해했는데, 이들은 모두 자살사이트를 통해 접촉했던 비민식 관계의 피해자들이었다. 시신은 모두 훼손된 상태였는데, 그중 일부가 집안 냉동고에서 발견이 되었다.

많은 기자들로부터 연쇄살인의 이유에 대한 질문이 쇄도하였고 결국 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서고 깊이 박혀 있던 책을 꺼내 다시 읽어 보았다. 그 책은 바로 국내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편지들을 모아 작성한 ‘살인중독’이란 도서이다. 한 신문사 여기자에게 유영철이 지속적으로 보냈던 편지를 모아 만든 책인데, 이때 제목,‘살인중독’은 필자가 직접 작명을 해준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살인행위에 중독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독이라는 용어를 붙여 조어를 했던 이유는 바로 유영철의 편지 내용 때문이었다. “사체를 처리할 때 너무 집중하고 긴장하기 때문에 암매장을 하고 돌아오면 숙면을 취할 수 있었어요. 외로움을 잊고 긴 시간을 자게 되었습니다. 깨어나서는 날아갈 듯이 개운해서 그때부터 아무렇지 않은 듯이 쇼핑을 하고 ...” 위에 인용한 그의 말은 엽기적이기는 하나 그가 왜 살인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는지 당시의 심정상태를 매우 적절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인 외로움과 불면의 고통을 잊혀지게 만든 행위를 쉽게 그만두기는 힘들었다는 것이 그의 고배이다.

물론 왜 그만둘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유영철의 편지내용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으나 그러면 왜 이런 끔찍한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인지는 평생 연쇄살인범을 연구하였던 FBI의 어떤 프로파일러의 말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연쇄살인이 일상생활에서의 소위 ‘The Fall‘이란 상태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무슨 일이든 잘 풀리지 않고 어떤 것으로부터도 의미를 찾기 어려운, 그야말로 심리적 안녕이 붕괴된 공황상태, 바로 그 지점에서 괴이한 판타지가 피어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음란물이 계기가 되기도 하며 어떤 때는 동물을 죽이는 직접 경험이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알려진다. 지루하고도 무의미한 일상보다 특별히 더 자극적인 그 무엇을 찾고자 하는 동기가 바로 연쇄살인의 動原이 되는 것이다.

연쇄범죄의 굴레는 다람쥐 체바퀴 같아서 한 번 올라타면 도저히 내릴 수는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극단적 자극, 그리고는 깊은 잠. 유영철의 표현 속 ‘암매장을 하고 돌아오면 숙면을 취할 수...’라는 내용이 끔찍한 범행의 대가가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이런 사이클은 약물중독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증상으로서 살인도 일종의 행위중독이 될 수 있음을 추정하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악의 고리, 그 어디에도 도덕적 판단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삶의 경계 저 끝부분으로 내몰린 인간은 짐승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인데, 이성적인 제어력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최근 강력범죄의 연이은 발생으로 최근 사형제 부활이나 사회보호법의 부활이 논의되고 있다. 조두순의 출소를 앞두고 아이들을 둔 부모들의 불안감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고 있다. 굳이 이 시점에 연쇄살인범죄의 예를 끌어낸 이유는 바로 극단에 몰린 인간의 모습에는 합리적 판단능력이 존재치 않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서는 최소한 자신의 욕구 추구 행위를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억제능력은 모두 합리적인 판단력으로부터 유래되는 것인데, 만일 세상을 살아나감에 있어 본능적 욕구 추구에의 통제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을 죽이면 사형을 받게 된다’라는 전제 정도는 너무나 먼 결과이어서 별다른 제지력을 느끼기 힘든 사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당장 부족한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통제력을 보호수용제도 등을 통해 타율적으로라도 제어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조두순을 우리 곁으로 돌려보내지 말아달라는 청원자가 40만을 넘겼다. 이번만큼은 우리 생활의 안전을 위한 구체적 대안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