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가평군, 철도와 전쟁의 이야기가 있는 도시

영연방참전기념비




국도 제46호선. 인천광역시와 강원도 고성까지 중부지방을 동서로 연결하는 국도이다. 인천에서 경기도 부천, 서울 영등포까지는 한강의 남쪽을 횡단하는 주요도로로, 서울의 여의도를 거치며 한강의 북쪽으로 넘어간다. 서울 마포, 용산, 성동, 광진구를 거쳐 경기도 구리시를 연결한다. 다시 동쪽으로 남양주시와 가평군을 거쳐 강원도 춘천시로 이어지고, 화천과 양구, 인제를 거쳐 고성에 다다른다.

이 구간 중 경기도 남양주에서 강원도 춘천에 이르는 구간이 잘 알려진 경춘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능부터 춘천까지는 철도 경춘선과 경쟁하듯 주요 거점을 지나가는데,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원지, MT촌으로 유명한 곳들이다. 샛터, 대성리, 청평, 가평, 강촌, 춘천이 그 곳이다. 이 유원지들은 물길을 끼고 있기에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지만, 다양한 도로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예전 물맑던 유원지의 모습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내륙의 물놀이 휴양지로 이곳을 찾는다. 지금도 고속도로와는 다른 주변 풍광을 가지고 있어, 호젓한 나들이를 위해서는 국도 제46호선을 이용한다.

강원도 춘천시와 경계를 이루는 경기도 가평군에는 남이섬과 자라섬이 사람들을 이끈다. 다양한 볼거리와 경기도라는 심리적으로 멀지 않은 거리감이 큰 이유로 여겨진다. 옛 경춘선 기차여행의 낭만은 이제 전철로 바뀌었지만, 옛 모습이 남아있는 철도 시설들은 추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철도의 흔적, 문화를 입히다



가평군 가평읍 중심에는 경춘선이 통과하였다. 가평역은 1939년 영업을 개시하고 6.25 전쟁으로 철도역이 소실되어 1957년 다시 신축, 1997년 또 한 번의 신축을 거친 역사는 2010년 경춘선 복선 전철화 개통으로 현재 전철이 다니는 달전리의 신역사로 이전을 하게 된다. 시외버스터미널과 가평역이 수도권을 연결하는 중심의 기능을 하였으나, 이제 사람들은 기차 대신 전철을 타고, 가평읍 중심이 아닌 곳에서 내려 읍내를 거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간다.

1997년 신축되었던 옛 가평역


읍내를 관통하던 경춘선 옛 가평역의 철로와 플랫폼은 사라지고, 현재는 가평뮤직빌리지가 조성되고 있다. 가평역이 옮겨가고 폐선과 폐역 부지, 주변 가로는 사람의 발길이 줄어들었다. 가평군에서는 폐역사를 활용하고 넓은 폐선 부지에 음악을 테마로 한 문화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경기도에 제안하여 넥스트경기 창조오디션에서 대상을 받았다. 활력을 잃었던 공간이 다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현장은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대상부지와 인접한 소규모 주거지들은 평화로운 모습이다. 사라지고 바뀌는 모습도 있지만, 옛 가평역의 모습을 역사 주변에 남은 창고와 한옥, 가로변의 점포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뮤직빌리지가 조성이 된 후, 인접한 지역과의 적절한 조화, 가로변 풍경이 유지되는 계획들을 통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것만이 아닌 과거의 모습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해야 진정한 명소로 거듭날 것이다.
옛 가평역 주변 창고


옛 가평역 앞 가로에는 문을 닫은 점포들이 많지만, 가까운 과거의 읍내 역전 풍경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단층 건물의 슈퍼와 미용실, 2층의 점포주택 등 영업을 하지는 않지만, 뮤직빌리지 조성과 함께 다시 번화가의 모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옛 가평역 앞 가로 풍경




경춘선 옛 구간이 지나가던 폐선부지는 뮤직빌리지 조성, 도로 확장, 주차장 조성 등이 이루어졌다. 물리적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철교이다. 옛 가평역부터 가평천까지 모든 레일을 사라졌지만, 가평천 위를 가로지르는 철교는 남아 레일바이크로 이용되고 있다. 폐선 옆 가평5일시장이 열리는 시장권역도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브랜딩 작업을 진행하여, 가평잣고을 1923 전통시장으로 거듭났다. 옛 것과 새로운 작업들이 지역 활성화를 위해 지속되고 있다. 폐선 부지 전체가 휴식공간으로 거듭나는 사례도 있지만, 인구밀도가 높지 않은 소도시에 사람이 중심이 된 또 다른 활용 방안이 만들어지고 정착될 수 있기를 바란다.

레일바이크 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가평천 위의 옛 철교




이제는 자리잡아 사람들이 기억하는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 가평의 자라섬이다. 가평읍에는 2008년 가평 옛 읍사무소를 리모델링하여 재즈센터로 문을 열었고, 축제 주관하는 사무국이 입주해있는 것 뿐만 아니라, 연중 음악 관련 강좌를 운영하고 장날콘서트 등의 공연을 개최하기도 한다. 강평 안에서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축제의 거점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관공서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문화시설로 바꾼 좋은 사례로, 가평5일시장의 북쪽에 돋보이는 장소가 되고 있다.

자라섬청소년재즈센터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가평은 한반도 중부지역 동서남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전쟁의 기억을 담고 있는 도시이다. 가평전투는 1951년 4월 북면지역에서 영연방 17여단과 중공군 제118사단간에 치러진 전투로 영연방군이 승리한 방어전투이다. 가평전투는 서울-춘천간 도로를 따라 수도 서울로 진격하는 중공군을 저지함으로써 후퇴하는 국군과 유엔군의 퇴로를 안전하게 확보해주고 수도권 방어를 위한 시간을 벌어 연합군 승리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전투에서 양군 모두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

가평터미널과 새로운 읍사무소와 중앙도서관, 가평경찰서로 둘러싸인 공간에는 특이한 기념비 하나가 있다. 1967년 유엔한국참전국협회와 가평군이 건립한 영연방 참전 기념비가 바로 그것이다. 1m 높이의 기단 위에 12m의 비가 올려져 있는데, 6.25전쟁시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4개국 용사의 영령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기념비에는 영연방 4개국의 국기, 전투상황 지도, 인명피해 상황, 참전약사 등의 매년 4월 마지막 주에 추모행사가 개최되며, 기념비와 함께 넓은 공원이 추모의 기억을 가진 장소로 자리잡고 있다.

영연방 참전 기념비




가평읍을 지나 75번 국도로 북면으로 들어가면 또 하나의 기념비가 있다. 1975년 유엔참전국협의회와 가평군민이 건립한 작은 기념비가 있고, 1983년에 가평군에서 추가로 다시 건립한 캐나다 전투기념비가 있다. 1983년 건립한 기념비는 0.7m의 기단 위에 6.5m의 비가 올려져 있는데, 캐나다 국기를 상징한 단풍나무잎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영연방기념비에서도 나타났지만, 1951년 4월 치열했던 가평전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

캐나다 전투 기념비



경춘로와 가평읍이 갈리는 가평오거리 아래 달전천 옆으로 가평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가평고등학교는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52년 개원한 가평중학원으로 문을 열었고, 미육군의 지원을 통해 1954년 가평 가이사고등학교를 개교하게 된다. 가이사라는 명칭이 특이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교내에는 여러 기념비가 있다. 작은 기념비에 새겨진 글씨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이 학교는 미 제40보병사단 장병들이 대한민국의 장래지도자들에게 봉헌한 것입니다. 서기 1952년 8월 15일. 케네스 카이저 고등학교. 케네스 카이저를 기억하며..”.

6.25 전쟁 당시 미육군 제40보병사단은 크릴랜드(Cleland) 장군이었다. 많은 공을 세웠고 한국 청소년들을 위하여 학원을 건설하였으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부하 전몰장병 중에서 최초로 희생당한 카이저(Kenneth Kaiser) 병사를 교명으로 삼아 기념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카이저가 가이사로 이름불려 학교의 명칭이 된 것이다. 가평중고등학교, 가평종합고등학교를 거쳐 현재 가평고등학교로 이어져오고 있다. 교내 한 켠에는 설립기념비와 희망탑 등이 자리하고 있어, 학교의 역사와 그 안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가평고등학교 내에 설치되어 있는 희망탑


가평고등학교 전경




가평읍 서쪽 언덕에는 가평종합운동장과 가평문화예술회관 등이 들어서 있다. 가평공설운동장은 1993년에 건립되었으며, 관중석과 시설은 경기장의 4분의 1로 계획되어 세워졌다. 경기도의 군단위에서도 이러한 작은 규모의 공설운동장을 볼 수 있다. 이 운동장을 돌아서 언덕에 오르면 기념을 위한 장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1895년 을미의병운동과 1919년 독립만세운동 당시 일제에 항거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봉기했던 선인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1년 건립한 가평의병삼일운동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6.25 전쟁시 가평군 일대에서 참전한 학도병들을 기리기 위하여 2000년에 건립한 가평학도의용대 참전 기념비도 있다.
가평의병삼일운동기념비


가평의병삼일운동기념비에서 내려다 본 가평공설운동장



역사적인 사건과 기념비를 통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현 시대의 사람들이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장소들로 자리매김 해야 진정한 문화의 도시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최호진 지음건축도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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