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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육성 없이는 대한민국 미래 없다

엄득호 dha@joongboo.com 2017년 11월 20일 월요일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을 조사할 때 빠지지 않았던 직업이 과학자였다. 한두 세대 전만해도 10대들은 장래 희망으로 대통령·과학자·의사·판검사·교수 등을 써냈다. 하지만 최근 희망직업에 과학자를 꼽는 학생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대다수 학생이 연예인, 운동선수, 의사, 검사, 변호사, 교사, 공무원과 같이 화려하거나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을 선호하고 있다. 과학자가 되겠다는 학생은 100명 가운데 고작 1~2명에 불과하다. 이런 쏠림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래의 대한민국은 ‘기초학문’은 없고 온통 ‘서비스 업종’만 판 치는 이상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과학은 생명줄과 같다.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에게 과학은 빼놓을 수 없는 학문이다. 국토가 좁고 자원도 없는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우수한 이공계 인적자원과 기술 덕택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구나 21세기는 ‘기술이 곧 국가경쟁력’인 지식정보화 사회다.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창조형 혁신’으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이런 나라에서 이공계 출신자를 홀대해서는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과학자들이 홀대 받고 있다. 과학과 그 응용분야인 이공계는 이미 기피라는 늪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공부 잘하는 고교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의과대학을 집중 지원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전국의 의학계열 학과 정원이 채워진 다음에야 서울대 공대 정원이 찬다는 얘기가 나온 지도 이미 오래됐다. 서울대 공대 대학원의 올해 후기 석사과정 모집에서 사상초유의 미달사태까지 발생했다. 중·고교에서도 수학과 과학은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 이공계 출신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 때 구조개혁을 통해 정부부처를 통합도 해보았지만 항상 과학기술은 홀대를 당했다. 실제로 이공계 출신이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또 어렵게 직장에 들어가도 고위직으로 올라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연구 인력에 대한 대우도 인문계 출신들과 비교해 형편없다. 이러니 사회적으로도 과학기술자는 의사·변호사·약사 등 다른 전문직과 대비해 직위나 처우에서 상대적으로 빈약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고, 직업의 안정성도 적은 게 현실이다. 이런 여건에선 아무리 훌륭한 이공계 육성대책을 내놓아도 효과를 보기 어려운 것이다. 과학기술이 이렇게 홀대 속에 방치된다면 10~20년 뒤의 국가 장래를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근 일본의 과학자 육성 정책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최근 3년 연속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내고 있다. 노벨상을 받은 일본 과학자들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분야에서 묵묵히 연구의 외길을 걸어온 공통점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오스미 교수는 도쿄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 중이던 1976년 이래 40년간 효모 연구에만 매달려 왔다. 집념을 가진 과학자들이 평생 딴마음을 품지 않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일본 정부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1995년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고 2001년부터는 종합과학기술회의를 설치해 신기술·신지식 개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도쿄대 등 소수의 명문대학이 인재나 연구 지원 등을 독점하지 않고 옛 제국대 그룹과 지방 국립대 등이 활발히 교류하고 경쟁하는 일본 과학계의 열린 풍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맡은 분야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장인이나 기술자가 이룬 성취를 높이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 역시 일본의 기초과학이 융성하는 데 바탕이 됐을 것이다.

정부와 국민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이공계에 지원할 수 있도록 이공계 등록금을 내리고 장학금은 대폭 늘려야 한다. 또 우수한 인재들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급여와 승진 등으로 보상하는 등 이공계를 매력적인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 고등학교에서 소홀하게 다뤄지는 수학·과학 교육을 강화하고 대학입시에도 반영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계 대학과 대학생에 대한 재정지원을 강화하고 이 분야 출신의 고급관료 등용문을 넓히는 등 명실상부한 우대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가 달렸다. 체계적인 투자와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 과학자 육성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엄득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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