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夜學)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요?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빈부격차가 심하던 시절, 정든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가난한 공장노동자와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웃들을 보듬어 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던 곳이 ‘야학(夜學)’ 이었습니다.

현재도 전국에는 350여 곳의 야학이 있는데, 그나마도 최소한의 교육환경을 갖추고 활동하는 곳은 160여 곳 밖에 되지 않습니다. 1980년대에 1천500여개의 야학이 전국에 존재했지만 다들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사라 졌습니다. 그렇다고 도움의 손길을 주는 곳도 딱히 없습니다.

사회적 최약자 배움터가 야학이지만, ‘야학은 우리가 갚아야 할 빚’입니다.

1980년대에 수원에는 8개의 야학이 존재 했지만, 많은 세월이 흐른 현재는 팔달구 매교동에 야학 1곳이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명칭은 ‘수원제일야학(현. 수원제일평생학교)’으로 1963년 수원공군비행장 장교들과 서울농대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학교인데, 가난하고 소외받은 우리내 이웃들에게 밀알이 되어 그들에게 또 하나의 삶의 희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낮에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해교육은 물론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 다문화 주민들을 위한 교육과 컴퓨터, 한문, 서예, 음악 등의 교육을 실시하고 밤에는 초중등 검정고시반을 운영하는데, 검정고시 합격률이 높아 지역에서 ‘검시 사관학교’라고도 불립니다.

제일야학에는 배움에 목마른 250여명의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중인데 늦깍이 학생들 말고도 위기학생, 다문화 학생들이 다니고 있고, 48명의 선생님들이 무료지식나눔 봉사를 몸소 실천하고 있습니다.곳선생님들은 현직교사, 공무원, 일반회사원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로 낮에 생업을 마치고 저녁이면 야학으로 와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적게는 2년차부터 많게는 25년차까지 있는데, 모든 선생님들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마음가짐으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낮에 직장에서 7~10시간씩 일을 하고 온 분들이 야학에서 2~3시간의 수업을 하면서도 전혀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은 그분들이 어떻게 그 어려운 시기를 살아왔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배우며, 서로에게 기대며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금요일에는 저녁약속을 잡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 20여명과의 수업약속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퇴근후 야학 주변에 있는 분식집에 들러 라면 한그릇을 서둘러 먹고 저녁7시부터 수업에 들어가는데 저녁 9시가 넘어야 수업이 끝납니다.

야학에서 검정고시반 중등부 사회교사로 6년째 지식나눔봉사를 실천하고 있는데, 제일야학 교훈인 ‘교학상장(敎學相長)’에 따라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모두가 스승이 되고 학생이 되어 어울리고 있습니다.

1963년 개교이래 55년의 역사를 가진 제일야학은 4천8백명의 학생들을 배출하였는데, 이들 졸업생들은 제일야학을 모교로 삼아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학력이 없고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이들에게 제2의 배움의 기회를 줌으로서 이 사회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권리를 찾을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야학을 졸업한 이들은 대부분 방통대나 전문대, 사이버대에 진학해 제2의 성장을 하여 소중한 사회의 구성원들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성장을 지켜보는 선생님들은 무한한 행복과 보람을 느낍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교육에서 만큼은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공정하게 배움의 기회를 선물하는게 선생님들의 소박한 꿈입니다.

이제 야학은 한 시대의 사라져 가는 문화가 아니고, 우리가 가장 힘쓰고 돌봐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옛날에는 국가가 가난해서 못했다면 이제 최소한의 것은 할 수 있는 시기가 됐으니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보고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국민들도 이제는 자기가 가진 재능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며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세상은 더 따뜻해 질 수 있습니다.

이필근 경기도시공사 보상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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