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의 첫 구절이다. 그 애국가 첫 구절에 있는 동해 명칭을 되찾자고 하면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우리는 일상에서 쓰고 있는 말이지만 국제사회에서는 동해보다는 “일본해”(Japan Sea 또는 Sea of Japan)라는 명칭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은 우리의 독도를 1905년에 슬그머니 일본 시마네 현(島根縣)에 편입시킨 것처럼 우리가 국권을 빼앗기고 있을 때인 1929년에 국제수로국(International Hydrographic Bureau: IHB. 현재는 국제수로기구 IHO(Organization)로 명칭 변경)에서 발행하는 해도집(海圖集)에 우리의 동해를 일본해(Japan Sea)로 등재하면서부터 우리의 동해 명칭은 일거에 사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자신들이 만들어 쓰는 지도에 우리의 동해는 조선해로, 일본해는 동경앞바다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일본은 위의 국제수로기구 창립회원국인데 비해 우리는 1957년에서야 그 기구에 가입한 늦깎이 회원국이다. 유엔 가입도 1991년에서야 이루어 진 후발 국가다. 그런 관계로 일본이 그동안 상용해 오던 일본해 단독표기에 우리가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하게 된 것은 1992년에 개최한 제6차 유엔 지명표준화 회의에서였다. 이어 1997년 국제수로기구 15차 총회에서도 똑같이 문제제기를 하였으나 일본은 꾸준히 동해는 원래부터 일본해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은 1602년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작성한 “세계지도“에 일본해라는 표기가 처음 등장한 이후 줄곧 일본해로 표기되어 왔고 1929년에 IHO가 지도를 발간할 당시에도 그동안 사용해 오던 일본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을 뿐이라고 강변한다.

일본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역사 연구를 통해 신민지 백성들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주고 왜곡된 역사의식을 갖도록 획책하였던 나라다. 그런 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삼국사기(BC59)에 동해명칭이 실려 있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또 광개토왕비(414)를 발견하고 나서 비문 일부를 훼손시키는 전략까지를 해 온 사람들이 그 비문에 동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잊었을 리도 없을 것이다.

더더구나 우리나라 애국가 첫 소절의 시작이 동해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동해를 거부하고 일본해를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히 숨은 뜻이 있다고 보여진다. 어쩌면 독도영유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먼 훗날 독도는 일본해 안에 있는 섬이므로 당연히 일본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차근차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에서는 1929년 이전까지 역사적으로 동해는 동해였을 뿐 한 번도 일본해로 표기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앞세워 동해 단독표기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본해와의 병기(倂記)만을 주장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일본해라는 표기가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통용되어온 현실을 고려한데다가 동해 단독표기를 주장하다가는 자칫 “독도영유권에 대한 역공을 당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일본해 사용이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을 반쯤은 인정해주자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같아 여간 거슬리지 않는다. 현실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고치자는 것인데 그 현실을 인정하자는 생각이야 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사고가 아닌가 한다. 또한 동해 단독표기주장이 일본의 독도 영유권주장에 힘을 실어줄 것처럼 말하는 것은 또 무슨 말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더더구나 유엔 지명표준화회의 결의나 IHO 결의에서조차 지명에 대한 분쟁이 있을 경우에는 당사국간의 합의로 해결하고 부득이 해결이 안되는 경우에는 병기하도록 정하고 있는데도 무엇이 그리도 겁이 나서 동해 단독표기를 주장하지 못하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병기만을 주장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단독표기를 주장하다가 안되면 국제적으로 병기결정이 나더라도 일단 단독표기주장을 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말이다. 정부가 하는 일이 때대로 이처럼 “미리 알아서 기는” 행태의 어리석은 외교 전략으로 손해만 보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처럼 느껴져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김중위 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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