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내 심연에 그루터기 하나 있다
일평생 두 팔에 익은 대패질
먼지 날리는 공사장에 푸른 등이 파도친다
자진모리장단으로 정확히 못질해대고
시멘트 짓이겨 허물어진 벽을 바른다
월남전 총알 스친 발목이 아리고
주름은 켜켜이 쌓이며
등이 둥글게 휘어가는 동안
나의 유년은 빈 모래사장을 서성거렸다
마지막 열정까지 관제*로 드리며
어린것들 품고 산 이름 석 자, 아버지
절박한 바다를 품고 남몰래 울어 본 적 있을까
한껏 작아진 어깨를 이제야 안아드린다
지금도 우듬지 지키며 묵묵히 선 등대
그 빛이 참 다사롭고 편안하다


*관제 : 포도주나 기름을 제물 위에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 붓는 행위





황병숙 시인
1972년 강원도 철원 출생. 2016년 한국문단 제95회 ‘창조문학신문’ 시조 장원, 2017년 ‘열린시학’ 한국동시조 등단, 2017년 수원문학인상 수상, 열린시학 회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