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행궁이 최근 들어 발굴과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큰 틀에서의 건축학적인 면에만 치중돼 있는 경향이 있어요. 화성행궁의 기능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화성행궁 본연의 역할을 조명해 향후 복원에 대한 올바른, 그리고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한신대에서 ‘화성행궁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 김선희 국사학박사는 29일 이렇게 말했다.

화성행궁은 18세기 후반 수원에 건설된 조선 최대 규모의 지방 궁궐이다. 이곳은 정조의 능행차와 혜경궁 회갑연, 낙성연 등이 열려 조선후기 문화예술의 거점이기도 했다.

화성행궁은 일제 강점기에 파괴됐고, 근래 들어 복원됐다. 하지만 이는 겉모습일 뿐, 역사적 의미와 자료적 고증이 제대로 반영된 복원인지에 대한 의문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국왕의 행차시 의례를 기록한 ‘정리의궤’에는 화성행궁에 측우기가 설치돼 있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해시계가 설치돼 있다.

또한 화성행궁에는 당대 최고의 명필 현판 3개가 걸려 있다고 수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현판의 위치와 수 모두 사료와 다르다.

“행궁(行宮)이란 각 지방에 건설되는 궁궐로 왕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내려와 잠시 머무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 지방의 관청으로 사용되죠. 그러다보니 다양한 기관들에 대한 자료가 남아있고 이를 통해 화성행궁의 주요 시설과 그 용도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가능합니다.”

현재 화성행궁 그 자체가 연구된 적은 없는 상황이다. 김 박사의 논문은 화성행궁 복원 당시 진행됐던 초기 연구를 종합, 오류 지적과 새로운 시각, 그리고 향후 방향을 제시한다. 화성행궁의 구조와 기물을 중심으로 관청으로서 어떻게 활용됐는지, 이를 토대로 당시 백성의 삶은 어땠을지를 중점적으로 연구한다. 그의 연구는 화성행궁 그 자체를 연구한 첫 번째 시도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행궁의 개념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조금 작은 궁궐로서 민속촌화 돼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서울 4대궁에 관심이 집중돼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에 지방에서의 궁은 어떻게 사용됐는지에 대한 다각적인 시각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에 연구를 하게 됐어요.”

이어 김 박사는 이번 연구가 화성행궁을 포함한 타 지방 행궁 복원과 고증에 기여하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학계의 기류가 조금 달라져 지배자에서 피지배자로,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연구 경향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화성행궁이 부각되는 것도 그 요인이 아닌가 싶어요. 화성행궁이 지방 행궁 중 최대 규모기도 하니까요. 앞으로 제 연구가 화성행궁을 포함한 다른 행궁의 시원과 고증의 기초연구로 활용됐으면 좋겠습니다.”

황호영기자/alex1794@naver.com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