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어디 살고 있느냐고 물으면 안양 아파트에 산다고 이야기 하래요.” 중부일보 취재진이 안양 벌말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초등학생에게 들은 말이다.사연은 이렇다. 평촌삼성래미안 아파트 101동~105동은 안양시,106동은 의왕시다. 106동 아이들은 집 앞 20m 거리에 있는 안양벌말초등학교 대신 5차선 도로를 건너 350m에 떨어진 의왕내동초등학교로 다닌다. 의왕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집 앞 학교로 보내기 위해 안양시로 위장전입하는 것은 이 동네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이러한 사정은 학교,행정 당국에서도 파악하고 있다. 벌말초 관계자는 “아침에 등교하는 모습을 보면 경계너머에서 오는 학생들을 볼수 있다. 원칙적으로 전학 처분해야 하지만 아이들을 쫓아낼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한다. 학교측은 60여 명의 학생이 불법 전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양시와 의왕시 경계문제는 15년 된 해묵은 것이다. 행정안전부의 단골 문제이기도 하다. 2016년 경계조정 문제가 거론될 때 가장 먼저 언급됐으며, 지방자치발전위원회와 경계조정위원회 테이블에 항상 올라간다. 그러나 당사자인 안양, 의왕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두 지자체가 버티면 상급기관에서 강제 조정할수 없다. 현 제도에서 안양,의왕시의 결단이 없다면 5년후에도 같은 아이템으로 취재 하고 기사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

용인 청명센트레빌 아파트는 수원 원천동·영통동에 둘러 쌓인 사실상 수원생활권이다. 1994년 수원 영통신도시 개발 당시 수원시로 편입이 제외되면서 ‘U’자형 기형적인 경계가 생겼다. 이 아파트단지 초등학생들은 246m에 있는 수원황곡초등학교를 놔두고 8차선 도로를 건너 1.19km 떨어진 흥덕초등학교로 다닌다. 주민들은 교육,행정 서비스를 받는데 큰 불편을 겪자 5년전 수원으로 편입을 요구하는 민원을 냈다. 수원시와 용인시가 서로 땅을 맞바꾸는 ‘빅딜’을 협의하고 이달 24일에도 경기도 중재로 실무협의를 했지만 이해관계를 둘러싼 ‘땅 싸움’에 결론을 못내고 평행선이다.

수원 망포동과 화성 반정동도 ‘n’자형의 기형적 형태의 행정구역으로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고,우려되는 곳이다. 망포 4지구 70%는 수원시 망포동 이지만 30%는 화성시 반정동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수원 망포동·곡반정동 일원과 화성시 반정동 일원을 맞바꾸는 안이 논의되다 중단된 상태다. 만약 행정구역 조정 없이 망포 4지구에 미니 신도시급 도시가 건설되면 학교대란,교통대란,행정불편이 불가피하다. 수원과 화성은 망포4지구 경계조정에 대한 협의를 하다 수원군공항 이전 문제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대화창구 조차 닫아 버렸다. 수원군공항 이전 같은 민감하고 큰 이슈는 뒤로 두더라도 주민생활과 밀접한 현안문제부터 풀어나가면 어떨까.

중부일보가 이번주 집중 보도한 내용이다. 해묵은 아이템이고, 언론에서 산발적으로 다뤄진 재탕,삼탕인 것도 있지만 비중있게 다룬 것은 위민(爲民)행정을 한다고,지방자치를 한다고, 입으로는 외치면서 시민들의 불편과 고충은 뒷전인 병폐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지자체간 경계조정은 상위기관의 중재안도 강제력이 없어 무용지물이다. 이해당사자간의 ‘합의’가 없으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경계조정을 둘러싼 지자체간 갈등이 계속되고 결국 주민들이 피해를 보면서 강제중재 할 수 있는 법안 마련이 거론되고 있다. 지방자치권의 남용과 행정편의주의에 중앙(국회)이 끼어들게 생겼다. 지방자치의 권한은 장(長)이 누리는게 아니고 주민이 누리도록 해야 한다. 이게 지방자치다.


수원-용인,수원-화성의 불합리한 행정경계조정 내용은 청와대 국민청원 코너에도 올라가 29일 현재 1천968명이 동의했다. 눈에 띄는 댓글이 있어 소개한다.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자체간의 다툼이 아닌 주민 불편 해결이 본질입니다.’ 장(長)들이 새겨들어야 할 목이다.

김광범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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